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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시네마 리뷰] '소중한 날의 꿈', 담백하지만 든든한 위로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1-07-06 15:41



'위안'과 '치유'가 올 상반기 서점가의 주요 키워드다. 위로를 받는 대상은 20대다. 베스트셀러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88만원 세대를 향해 "나약하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더 노력해"라고 닦달하는 대신 "겪어봐서 나도 안다. 견디다 보니 좋은 날이 오더라"라고 위로한다. 그런데 나는 서점에 갈 때마다 그런 소위 '위안 서적'을 손에 들기가 부끄러웠다. 다독이고 다시 죽음의 질주에 서도록 격려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의 문제를 떠나서, 내가 위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등록금에 짓눌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도 않는다. 학벌 피라미드의 정점에 해당하는 대학교에 다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나를 사랑해준다(이건 나의 착각인가?). 그런데도 나는 내가 나인 걸 좋아하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너무 크다. 삶이라는 걸 손에 쥐고 서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나는 위로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필로 명상하기'에서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의 위로 앞에서 자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여고생 이랑(목소리 박신혜)의 쌉싸래한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달리기에서 좌절을 느끼면서 이랑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는 뭘 잘할 수 있지? 나는 뭘 하며 살지? 그러다 새로 맺은 인연들은 이랑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든다. 서울에서 전학 온 수민(오연서)은 서른세 살에 죽겠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조숙한 아이다.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철수(송창의)는 순진한 열정이 빛나는 아이다. 이랑은 수민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지도 못했고, 철수처럼 열정을 쏟을 만한 꿈도 가지지 못했다. 1970,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 음악 등이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지르는 젊은 부모들 사이에 앉은 나는 울적해졌다. 나의 추억도, 꿈도 빈곤한 것 같았다. 이랑이 떠올린 공룡들처럼 나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어디에도 남겨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랑이 "나는 내가 나인 게 싫어. 나는 맹물이야"라고 말하며 울먹일 때 나도 울고 싶었다.

내가 찔끔거리는 동안 이랑은 자랐다. 다시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달린다. 동경하던 수민의 어린 면을 발견하고 보듬어준다. 꿈이 허황되다고 놀림 받던 철수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랑 덕분에 당당한 소년이 될 수 있었다. 이랑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랑이 아무리 평범하다고 그녀의 삶, 그녀의 존재가 평범한 건 아니다. 철수와 함께 땅끝 마을에 가서 본 것처럼 몇 만 년의 세월을 견딘 건 작은 공룡의 발자국이다. 제일 잘해낸 사람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해냈다는 사실, 사랑하고 눈물을 참고 다시 웃고 그렇게 살아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철수네 삼촌 말이 맞다. 사람이니까 불안하고 두려운 거다. 이렇게 큰 세상에서 나 하나 사라져도 온 우주가 꿈쩍도 안 할 것만 같은 불안과 두려움. 그래도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극적 사건이 없는 '소중한 날의 꿈'이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랑이 도내 육상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다거나 철수와 철수네 삼촌이 우주 비행의 꿈을 이룬다는 식의 결말이었다면 나는 서운했을 것이다. 그러면 '소중한 날의 꿈'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나와 달리 잘난 누군가, 부러워해야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소중한 날의 꿈'의 위로를 듣노라니 마음에 살이 붙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애니메이션이 9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탓이다. 중간에 포기하지도,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죽어야 밋밋한 이야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요구에도 굽히지 않은 이 애니메이션의 담담한 목소리는 달콤하지는 않아도 듬직하다. 김해리 청룡시네마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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