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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과 '치유'가 올 상반기 서점가의 주요 키워드다. 위로를 받는 대상은 20대다. 베스트셀러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88만원 세대를 향해 "나약하게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더 노력해"라고 닦달하는 대신 "겪어봐서 나도 안다. 견디다 보니 좋은 날이 오더라"라고 위로한다. 그런데 나는 서점에 갈 때마다 그런 소위 '위안 서적'을 손에 들기가 부끄러웠다. 다독이고 다시 죽음의 질주에 서도록 격려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의 문제를 떠나서, 내가 위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등록금에 짓눌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도 않는다. 학벌 피라미드의 정점에 해당하는 대학교에 다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나를 사랑해준다(이건 나의 착각인가?). 그런데도 나는 내가 나인 걸 좋아하도록 늘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너무 크다. 삶이라는 걸 손에 쥐고 서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나는 위로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극적 사건이 없는 '소중한 날의 꿈'이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랑이 도내 육상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다거나 철수와 철수네 삼촌이 우주 비행의 꿈을 이룬다는 식의 결말이었다면 나는 서운했을 것이다. 그러면 '소중한 날의 꿈'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나와 달리 잘난 누군가, 부러워해야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소중한 날의 꿈'의 위로를 듣노라니 마음에 살이 붙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애니메이션이 9년이라는 제작 기간을 거쳤기 때문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어려운 사정 때문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탓이다. 중간에 포기하지도,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죽어야 밋밋한 이야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요구에도 굽히지 않은 이 애니메이션의 담담한 목소리는 달콤하지는 않아도 듬직하다. 김해리 청룡시네마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