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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진씨, 유재석씨에 보내는 편지]
언젠가부터 말이죠. TV는 웃음과 눈물이 아닌 땀에 젖어있죠. 오직 1등이 되기 위하여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를 보고 있노라면,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올 뿐 아니라,성실하다고 자부했던 내 자신에게 미안해진답니다. 그 1등이라는 것 또한 기준을 다르게 보면 다를 수 있는 것인데 말이죠.
우선 김국진씨, 1일 방송됐던 tvN '스타특강쇼'에서 당신처럼 지난날의 과오를 당당하게 밝히며 교훈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1991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해 신인상을 거머쥐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지만, 돌연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미국행을 선택, 괘씸죄에 들어 '연예인 영구 제명'을 선고받았죠.
이후 2년 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진행을 맡았던 '오키토키쇼'는 비참하게 조기종영하고, 내리막만 있을 줄 알았던 당신에게 '도전 추리특급'으로 부활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죠. 그 뒤로 승승장구했죠. 대한민국 광복 아래로 50년 동안 가장 사랑받은 연예인 1위에 꼽혔다면 말 다했죠.
'어라?', '여보세요', '사랑해요' 등 자고 일어나면 당신의 말투가 유행이 되고, CF는 시간이 없어 찍을 수 없을 지경, 1주일에 1억씩 벌었던 당신. 오죽하면 '국찐이 빵'까지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희대의 아이콘이었죠.
하지만 내리막은 한순간이었죠. 손대는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 골프 프로테스트에 15년이나 낙방, 이혼까지. 이런 블랙홀이 또 있을까요. 이혼 기사가 각종 스포츠지 톱면을 장식하고, 기자들이 집 밖을 진치고 있을 때,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했을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있죠. 그래서 당신은 '단언'할 수 없다고 했어요. 모든 일이 계획대로 갈 수만도 없다고 했어요.
당신의 강연은 훈계한답시고, 계도적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아요. 그저 당신의 삶을 열거하고, 까마득한 후배 박경림씨를 보고 느낀 바가 많다고 했을 뿐이에요. 조금 더 살아본 사람으로서 겪은 인생에 대한 당신의 강연은 폭풍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이 강연의 이면에는 당신의 인성이 뒷받침된다는 것도 알아요. 방송가에서 막내 작가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이는 당신의 속 깊은 인간성은 유명하거든요.
유재석씨, 얼마 전 대기실에서 만났을 때도 반갑게 안부를 챙기며, 음료를 건넸었죠. 신입 기자일 때나 지금이나 항상 친절한 태도로 살갑게 대해주는 당신 덕분에 잠시나마 피로를 잊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어제 마지막에 들려준 곡 '말하는대로'는 각박한 현실에서 방향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쌓인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해줬죠.
'말하는대로'는 현재 톱M이자, 전국민이 사랑하는 MC 자리에 설 때까지의 유재석씨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더 뭉클했어요.
지난 1991년 데뷔해 꼬박 20년을 넘겼지만, 사실 유재석이란 이름을 알린 지는 7년 안팎이네요. 10여 년 넘게 무명 세월로 개그맨의 꿈을 꿨던 당신, 얼마나 막막했었을까요. 한 PD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도 유재석은 빵~터지는 연예인이었지만, 카메라 울렁증때문에 방송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PD들이 유재석을 쓰는데 부담을 느꼈다."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등 당신과 데뷔했던 동기들은 중에는 유난히 스타들이 많았어요. 카메라 울렁증이라는 치명적 결점으로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던 당신은 얼마나 답답하고, 여러 번 좌절했을까요.
그랬던 당신에게 20분짜리 예능 프로그램을 맡을 기회가 찾아왔죠. 당대 톱스타 핑클이 메인, 당신은 메뚜기 탈을 쓰고 몸으로 웃기는 캐릭터였을 뿐이죠. 더운 여름에도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메뚜기 탈을 쓰고 둘리 춤과 메뚜기 뛰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당신은 역경을 헤쳐나갔죠.
그리고 노래처럼 됐죠. 당신이 불렀던 노래의 한 구절을 적어볼게요."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김국진씨, 유재석씨.당신들을 '국민MC'에서 '국민 선배'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김겨울 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