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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오디세이] 김기덕 키드의 '탈 김기덕' 첫걸음

임정식 기자

기사입력 2011-06-17 10:42 | 최종수정 2011-06-17 10:42



'풍산개'(감독 전재홍)는 작품의 안과 밖에서 두루 살펴보게 되는 영화다.

영화 밖의 상황이 먼저 주목을 끈다. 이때 김기덕 감독을 피해갈 수 없다. 전재홍 감독은 장훈, 장철수, 노홍진 등으로 이어진 김기덕 사단의 일원이다. 게다가 김 감독은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전 감독은 2007년 '아름답다'라는 예술영화 한 편을 발표한 신인이다.

무엇보다 제작 과정이 복잡하다. 감정도 얽혀 있다. 처음엔 장훈 감독이 '풍산개'를 진행했다. 중간에 메이저 영화사로 옮겨갔다. 김기덕 감독은 큰 충격을 받았고, 폐인이 됐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풍산개'는 좌초 위기에 처했다. 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어렵게 완성했다. 김 감독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아리랑'을 통해 장훈 감독을 실명 비판했다. 달갑지는 않지만, 어쨌든 '풍산개'는 핫 뉴스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풍산개'를 이런 외적인 맥락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결국은 전재홍 감독의 영화다. 그가 스승의 시나리오를 어떻게 소화해서 자기 작품으로 빚어냈느냐가 초점이다. 그 결과는? '김기덕 키드'인 전 감독이 '탈 김기덕'의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기덕 감독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 비결은 유머와 멜로다. 김기덕 사단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이다. 유머와 멜로가 영화 안에 완전히 무르녹아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스승이 걷지 않은 새 영토를 개척하고, 이를 적절히 버무려 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여기서 조심할 게 있다. '풍산개'가 김기덕이라는 이름을 지우고도 여전히 매력적인가 하는 점이다. 가능성과 함께 한계 혹은 허점도 동시에 드러낸다.

영화는 분단 드라마다. 풍산(윤계상)이라는 인물 자체가 흥미롭다. 상징적이기도 하다. 이름도, 나이도, 이념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다. 그는 서울과 평양을 3시간만에 오가며 물건을 배달한다. 어느 날 인옥(김규리)이라는 여성을 서울로 데려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인옥은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 간부의 애인이다. 이때 뜻밖의 변수가 발생한다. 풍산과 인옥 사이에 남녀의 감정이 싹튼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김기덕 영화가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성 때문에 줄곧 비판받았던 것과 확연하게 달라진 점이다.

물론 남북 대결도 중심축이다. 정보기관 요원과 간첩의 대결로 표현된다. 김기덕이 연출, 제작한 영화들에서 동시대 상황이 이처럼 전면화된 적은 거의 없었다.'수취인불명'(2001)이 기지촌 양공주와 혼혈아의 식민지적인 삶을 담은 것이 눈에 띌 정도다.

남북한 요원들은 풍산에게 끊임없이 '넌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협조하면 제3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하고, 고문도 자행한다. 그런데 영화는 끝까지 풍산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분단 상황에 대한 감독의 고민과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풍산개'의 장르는 복합적이다. 액션과 멜로, 코미디가 혼재돼 있다. 기존의 김기덕 영화에 비해 단조롭지 않다.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어색한 점이 눈에 띄지만, 그것들이 이뤄내는 리듬은 꽤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하실 장면은 과유불급이다. 풍산은 남북한 요원들을 지하 창고에 가두고, 그들끼리 피 튀기며 싸우게 만든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다. 하지만 너무 작위적인데다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연출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묘사, 요원들의 어설픈 애국심 표현, 룸살롱 양주 파티 등도 매끄럽지 않다.

윤계상의 연기는 괄목상대의 대상이다. 그는 대사 한 마디 없으면서도 날렵한 육체의 움직임과 눈빛만으로 영화를 무게감 있게 이끈다.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기쁨을 안겨준다. 엔터테인먼트팀 dad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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