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한국농구연맹(KBL)이 최근 미숙한 경기 운영과 오심을 연발하며 흥행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주 '2023~2024'시즌 남자 프로농구 최고 화제는 하위팀이던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돌풍이었다. 28일 고양 소노전(76대77 패)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앞서 서울 SK, 부산 KCC, 원주 DB 등 강호를 잇달아 격파하는 등 1월 들어 7승2패의 놀라운 승률을 보였다.
특히 지난 25일 홈경기로 펼친 KCC전(100대98 승)은 역대급 명승부로 꼽혔다. 4쿼터 종료 1.5초 전 샘조세프 벨란겔(한국가스공사)의 레이업으로 85-84 재역전, 0.8초 전 최준용(KCC)의 미들슛+보너스 원샷으로 87-85 또 역전, 0.4초 전 벨란겔의 자유투 2개로 동점. 이어 연장 종료 2.6초 전 신승민(한국가스공사)의 기적같은 3점 위닝샷으로 끝났다.
한데 중대한 '옥에 티'가 있었다. KBL의 의혹투성이 경기 운영과 오심이다. 경기 중계 영상을 분석한 결과 치명적인 의문점이 발견됐다. 승리를 눈 앞에 둔 KCC의 운명을 갈랐던 4쿼터 종료 0.8초 전의 '미스터리'는 마지막 공격권을 가진 한국가스공사 김동량의 베이스라인 패스에서 시작됐다. 잽싸게 돌아뛰던 벨란겔이 페인트존 중앙에서 양 발이 떨어진 상태에서 공을 잡은 뒤 왼발로 첫 스텝을 했고, 이후 오른발에 이어 왼발 3번째 스텝을 한 뒤 장거리슛을 던졌다. 공이 벨란겔의 손에서 떠나자 종료 버저가 울렸고, 슈팅 비거리는 짧아 경기가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벨란겔의 슛동작에서 KCC 허웅의 접촉이 있었다며 파울이 불렸고, 종료 0.4초 전 벨란겔이 자유투 3개 중 2개를 성공했다.
4쿼터 종료 0.8초 전 벨란겔이 아웃오브바운드를 처음 잡는 순간. 경기영상 캡처
이어 벨란겔이 공을 잡은 뒤 왼발에 이어 두 번째 스텝 오른발을 디딜 때도 경기시간은 여전히 0.8초를 가리키고 있다. 경기영상 캡처
이후 벨란겔이 세번째 스텝을 밟는 순간, 경기 시간은 0.5초를 가리키고 있다. 볼 캐치 순간부터 두 번째 스텝까지 소요돼야 할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경기영상 캡처
이 과정에서 전광판 계시기에 의혹이 드러났다. 공격시간은 코트 안의 선수가 공을 잡는 순간부터 작동하는데 영상을 보면 벨란겔이 공을 잡은 뒤 두 번째 오른발 스텝을 하기까지 시간은 0.8초 그대로였다. 이후 세번째 스텝을 했을 때 0.5초를 가리켰고, 허웅이 슛 동작을 하던 벨란겔과 닿는 듯한 순간은 종료 0.3~0.2초 전이었다.
벨란겔이 두 번째 스텝을 하기까지 계시기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경기 이후 농구계에서 "불과 0.8초 사이에 스리 스텝을 밟은 뒤 슈팅한다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냐"고 의구심을 제기할 만했다.
인간 동역 연구계 분석에 따르면 육상 100m 세계신기록(9.58초) 보유자 우사인 볼트 등 세계적인 육상선수들이 100m 경기에서 1보를 딛는데 평균 0.2초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란겔이 3번째 스텝을 밟았을 때 0.8초→0.5초를 가리켰다. 공을 잡자마자 디뎠던 첫 스텝을 반 보로 치더라도 2.5보를 달리는데 0.3초 걸렸다는 계산이다.
직선 주로를 전력 질주한 우사인 볼트보다 공을 잡고 곡선으로 뛰었던 벨란겔이 훨씬 빨랐다고? 결국 계시기 오작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4쿼터 종료 0.4초 전 벨란겔이 슈팅을 시도하려는 순간, 허웅의 팔이 접촉하기 전의 모습. 심판은 그러나 마지막 공격시간 조정에서 0.4초가 남았다고 판정했다. 경기영상 캡처
벨란겔이 슈팅을 시도하는 순간 골대 위 계시기는 0.2초를 가리키고 있다. 이전에 계시기 작동 오류로 잃어버린 시간이 없었다면 경기가 종료됐을 것이란 지적이다. 경기영상 캡처
4쿼터 종료 0.4초 전, 벨란겔이 슈팅을 할 때 허웅은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심판은 마지막 잔여 시간을 0.4초로 계시해 이 마저도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경기영상 캡처
종료 1.5초 전 최준용의 슈팅 과정을 살펴 봐도 같은 의문이다. 최준용이 아웃오브바운드를 받자마자 터닝 점프슛을 성공한 뒤 심판이 인정한 남은 시간은 0.8초, 슛동작까지 0.7초 걸렸다. 반면 3스텝을 한 뒤 던진 벨란겔의 슈팅은 0.4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결과가 나온다.
KBL의 운영 미숙은 28일 소노-한국가스공사전에서 극에 달했다. 3쿼터 종료 2.0초 전 앤드류 니콜슨(한국가스공사)의 턴오버로 튀어오른 공을 치나누 오누아쿠(소노)가 낚아채 착지하는 과정에서 니콜슨의 접촉이 있었다. 그러나 심판은 루즈볼 경쟁에 가담하려다가 멈칫하며 오누아쿠를 피해 지나가던 박봉진(한국가스공사)의 파울을 선언했다. 최고 득점원인 니콜슨의 파울이 인정됐다면 4개째로,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거꾸로 휘슬이 불린 것이다. 소노가 결국 승리했기에 망정이지 두고 두고 회자될 만한 오심이었다.
반면 석패를 당한 KCC 구단은 '0.8초의 미스터리'에 대해 심판설명회를 요청해봐야 결과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속앓이만 할 뿐, 문제 삼지는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농구계 관계자는 "심판의 자질 부족, 미숙한 경기 운영 등에 대해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개선되는 게 없다. KBL이 너무 안일한 게 아니냐는 불만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KBL은 "한국가스공사-KCC전 당시 계시기 운영을 두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관련 사안을 엄중하게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