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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양무록'에 대한 양희종의 솔직반응. 우츠노미야 생생토크 양희종의 농구인생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23-03-01 15:52


[파워인터뷰] '양무록'에 대한 양희종의 솔직반응. 우츠노미야 생생토크 …
KGC 양희종. 사진제공=kGC

[우츠노미야(일본)=스포츠조선 류동혁 기자] 일본 우츠노미야에서 열리고 있는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에 참가한 안양 KGC 인삼공사.

가장 주목받는 선수는 당연히 양희종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KGC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2007년 황금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KGC의 전신 KT&G에 지명된 양희종은 17년 간 KGC에서만 뛰었다.

지난해 KGC와 3년 계약을 맺었던 양희종은 올 시즌 도중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했다. 이미 KGC와 합의된 부분이고, 양희종의 결심도 있었다. 그에게 당연히 많은 것이 궁금했다. 17년 간의 KGC 생활, 한국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친 그의 농구 인생에 대해 궁금했다. 그를 1일 우츠노미야에서 만났다.


[파워인터뷰] '양무록'에 대한 양희종의 솔직반응. 우츠노미야 생생토크 …
2005년 동아시아대회 남측 기수로 선정됐던 양희종, 연합뉴스
길거리 캐스팅

매산초 3학년. 그는 확실히 달랐다. 탁월한 운동신경과 좋은 신체조건이 그때부터 있었다. 양희종은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매산초 체육 부장님이 '농구하고 싶지 않냐'고 하셨어요. 길거리 캐스팅이 된 거죠. 하하하"라고 담담하게 농구를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그는 매산초-삼일중-삼일상고-연세대를 거쳤다.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런데 4학년 때 본격적으로 팀 훈련을 시작하면서 제 농구인생 첫 번째 위기가 왔어요"라고 했다.

또래보다 기량도 신체조건도 우수한 양희종은 5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매일 매일 혼나는 게 일상이었어요. 주전들이 다 6학년 형들이었는데, 저만 5학년이었어요. 기량이 다른 주전 형들보다 떨어져서 혼이 났는데,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들 정도였어요"라고 했다.


당시에는 체벌도 흔했다. 멍이 든 몸을 보면서 어머니는 속상해 하셨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버티고 견뎌라"고 하셨다.

1년을 견디자, 살 만해졌다. 그는 "그때 경험은 소중했던 것 같아요. 6학년 되면서 다시 농구하는 게 즐거워졌어요. 중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신체적 변화가 찾아왔어요. 중 2때부터 2년간 약 20cm가 커졌고, 몸도 좋아졌어요. 그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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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초창기 양희종의 모습. 스포츠조선 DB
양무록

당시 양희종 뿐만 아니라 하승진이 있었던 삼일상고는 고교 최강이었다. 하지만, 삼일상고 3학년 때 큰 부상을 당했다.

양희종은 "그때는 부상이 있어도 참고 뛰는 게 일상이었어요. 오른발 피로골절을 안고 있었는데, 레이업 슛을 올라가다 밟혔어요. 오른발 뼈가 으스러졌고, 1년 동안 농구공을 놓고 재활에 매진했어야 했어요, 다행히 연세대 진학이 확정돼 있었지만,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라고 했다. 또 "당시에는 참 무식했나봐요. 뼈가 빨리 붙기 위해서는 꼼짝하지 말라고 해서 먹고 자고를 반복했어요, 결국 20kg이나 쪘어요. 당시 제 적정 몸무게가 82kg 안팎인데, 108kg까지 나갔으니까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복귀가 쉽지 않았다. 워낙 몸이 올라오지 않아서 "선수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 점심, 저녁 매일같은 훈련했다. 훈련량의 한계를 만들지 않을 정도로 독하게 매달렸다.

결국 양희종은 연세대 시절 대학 최고의 포워드로 올라섰다.

프로 적응도 순조롭진 않았다. 그는 "KG&G(현 KGC)에 들어가니까, 출전시간이 중요했어요. 허슬, 디펜스 등 수비에만 집중하니까 자연스럽게 출전시간이 늘더라구요. 당시 유도훈 감독님이 훈련도 상당히 강하게 시키셨어요"라고 했다.

그는 "당시 제가 맡은 선수는 '매치업에서 죽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마크했어요. 신경전도 많았구요. 수비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공격이 잘 되지 않았어요. 숨이 턱까지 차 오른 상태에서도 수비를 하니까, 막상 슛을 던질 때 밸런스가 깨졌습니다"라고 했다.

때문에, 양희종은 '양무록(많은 시간을 뛰고 공격 스탯이 없다는 의미의 무기록자를 줄인 말)'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도 생겼다. 그는 웃으면서 "처음에는 열 받았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작명하신 분의 센스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농구 팬의 비판에 대해 여유있게 볼 수 있게 됐다. 단, 그는 큰 경기 절체절명의 승부처에서 3점 클러치 능력을 잇따라 터뜨리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주위의 것들이 희미하게 되면서 림만 보이는 경험을 많이 해요. 집중력이 최고조로 달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경기 내내 쓸 수 없어서 아쉬워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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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종의 블록슛 장면. 스포츠조선 DB
KBL 역대 최고의 디펜더

그는 KBL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된다. 그는 "잘한다고 해주시니까,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솔직한 수비를 잘한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어요. 그냥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노하우도 생기고 길도 보이고 그렇습니다. 단, 어릴 적 공이 림을 맞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공이 튀겠다, 패스가 어디로 오겠다는 직감은 좋았던 것 같아요"라고 했다.

가장 힘든 매치업은 문태종, 문태영을 꼽았다. "힘도 좋고 슈팅 기술도 좋고, 매치업에서 너무 껄끄러웠어요, 아시아에서는 이란의 에이스 니카 바라미와 레바논의 조던이라 불리는 엘 카티프가 가장 힘들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문태영과 신경전도 많이 펼쳤다. "수비를 하면 컨택트가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다 한 대 맞고, šœ리기도 하면서 문태영 형과 신경전을 벌인 것 같아요. 하지만 PO 시리즈가 끝난 뒤에는 서로 얼싸안고 '수고했다'고 서로 격려해줬어요. 태영이 형한테 감정같은 건 남아있지 않죠"라고 했다.

안양 KGC는 마이클 조던의 '라스트 댄스'를 오마주한 '라스트 디펜스'를 촬영 중이다. 양희종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는 "과분하죠, 그래도 헛되게 살지 않았네요, 농구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현 시점에서 이승현 문성곤이 수비를 가장 잘하는 것 같아요, 뒤에서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 이제 지도자 생활을 준비해야죠"라고 인터뷰를 마쳤다.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농구 인생을 되돌아봤다. 자신의 농구 추억을 돌이킬 때마다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최선을 다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후련한 '은퇴 미소'가 아닐까.
우츠노미야(일본)=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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