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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과 슬픔, 우승으로 이겨내다.'
KB로선 올 시즌에 접어들면서 '어우K'(어차피 우승은 KB)라는 말이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FA 최대어인 국내 최고 슈터 강이슬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국보 센터 박지수를 보유한 팀이 외곽포까지 갖추며 마지막 약점을 지웠으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팀 동료 선가희를 지난달 뇌출혈로 갑작스레 떠나보내며 선수들은 비통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부담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통합 우승이라는 확실한 목표 설정을 했고, 끝내 이를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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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과 불안 사이
강이슬은 올 시즌 경기당 출전시간이 4분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평균 득점(18.04점)은 지난 시즌과 거의 비슷했다. 또 3점포 성공률은 5% 더 높아졌다. 확실히 이전 팀에서보다 부담감이 줄어들면서, 효율적인 공격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강이슬은 14일 3차전에서 무려 32득점을 날리며 확실한 우승 청부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프로농구에서 사령탑 경험이 없이 코치 경력만 있는 김완수 감독의 선임은 다소 모험이자 불안 요소였다. 아무리 강이슬을 영입했더라도 초짜 감독이 우승을 정조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였다. 그러나 김 감독은 박지수를 중심으로 하는 KB의 플레이를 탈피하기 위해 빠른 공수 트랜지션과 패스워크, 무빙 오펜스 등을 몸에 배도록 만들었고, 전 선수의 리바운드 적극 가담도 주문했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함께 갖춘 리더십은 KB의 팀 컬러를 변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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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가 아닌 KB의 시대
물론 우승 드라마를 완성시킨 박지수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화룡점정'은 강이슬로 완성됐지만, 이를 가능케 한 '용의 몸통'은 역시 박지수였다.
박지수를 상대하는 다른 팀 베테랑 선수들이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여 "수준이 또 업그레이드 됐다"고 말할 정도로, 지난해 도쿄올림픽와 WNBA를 함께 경험하면서 더 무서워졌다. 풀타임 리거가 된 5년만에 평균 출전 시간이 처음으로 30분 밑으로 내려갔음에도, 평균 득점과 어시스트는 거의 줄어들지 않은 반면 어시스트 갯수가 경기당 1개 가까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효용감 높은 농구와 함께 동료들과의 팀워크도 더 좋아졌음을 보여줬다. 대둔근 파열에도 불구, 챔프전까지 소화할만큼 엄청난 책임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박지수가 부상과 뒤늦은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시즌 막판과 포스트시즌에서 출전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를 강이슬은 물론 김민정 허예은 최희진 김소담 심성영 등이 번갈아 훌륭히 메워주며 버텨낸 것은 우승 못지 않은 수확이 됐다. '박지수 원맨팀'이 아닌 '원팀'으로의 탈바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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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와 팬들을 위해
챔피언을 확정지은 후 펼쳐진 우승 현수막에는 '23, SUN'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고(故) 선가희의 등번호이다. 선가희의 영정에 우승 트로피를 바치기 위해 선수들은 더욱 하나가 됐다. 그리고 마침내 이를 완성시켰다. 선가희와 가장 친했던 이윤미가 우승 세리머니에서 그의 유니폼을 입고 골대 네트를 자르며 펑펑 울었고, 선수단은 이날 경기장을 찾은 선가희의 아버지를 헹가래 치며 끝까지 함께 했다. 또 우승 순간을 원정 현장에서 응원해준 청주 홈팬들을 위해 선수들은 단체 사진을 함께 찍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 누구를 위한'이라는 말이 이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이어지게 됨을, KB는 그대로 보여줬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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