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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4강 미디어데이, 난무했던 언중유골 진짜 의미는?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6-03-06 15:01


4강 미디어데이에 참가한 네 팀의 감독과 대표선수. 사진제공=KBL

미디어데이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다. 플레이오프라는 축제의 장. 거기에 초대된 선택받은 네 팀만이 초청된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여유로움이 있다. 모비스 양동근은 미디어데이 직후, 하승진(KCC) 오세근(KGC) 이승현(오리온) 등을 가리키며 "이제 (함)지훈이가 와야 할 것 같다. 내가 너무 왜소해 보인다"고 했다.

나머지 선수들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6일 KBL 센터에서 열린 2015~2016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이런 여유로움 속에서도 사령탑과 선수들은 여러가지 생각에 잠긴다. 웃는 얼굴로 무대에 앉았지만, 하루 뒤부터는 처절하게 싸워서 넘어뜨려야 하는 상대다. 때문에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미디어데이 특성상 어느 정도 시리즈 구상이나 용병술, 그리고 각오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적당히 가리거나, 연막을 치는 센스도 필수적이다.


왼쪽부터 하승진, 추승균 감독(이상 KCC), 김승기 감독, 오세근(이상 KGC) 사진제공=KBL
KCC vs KCC=약점을 메워라

6강 미디어데이에서 KGC 김승기 감독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멘트 자체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당시 "이상민 감독은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이날 "이겨도 괜찮고, 져도 괜찮다 농구 팬이 명승부였다고 인정하는 경기를 펼치고 싶다"고 했다. 단지, 정규리그 1위 KCC를 맞아 도전하는 입장에서 건넨 겸손함이었을까.

KGC는 완벽한 도전자다. 네 팀 중 가장 그렇다. 심리적으로 '도전자'는 편안하다. 이런 심리적 편안함을 드러내면서, KCC에 부담을 가중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여기에 KGC를 둘러싸고 있는 몇 가지 불명확하면서도 마뜩치 않은 '여론'들이 있다. 예를 들어 KGC의 터프한 수비를 '더러운 농구'로 몰아세운다거나, 몇몇 선수의 '오버 액션'에 대한 플라핑 논란이다. 이런 논란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가 담긴 김 감독의 말이다. 그는 "수비는 터프하게 하는 게 맞는 것이다. 아무렇게 주는 건 농구가 아니다. 4강전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KCC 디펜스도 터프하다. 재미있는 경기를 하고 싶어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라고 했다. 곰곰히 곱씹을 필요가 있는 멘트다.

KCC 추승균 감독은 플레이오프가 지도자로서 첫 무대다. 당연히 낯설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여기에 KCC 하승진이 "(선수단은) 감독님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를 100% 신뢰한다"는 발언은 의미가 있다. 추 감독이 초보 사령탑이지만, 그를 중심으로 개성 강한 선수들이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 하승진과 전태풍은 부상이 없는 시즌을 치렀다. 그만큼 비 시즌 준비가 효율적이었다는 의미. 추 감독이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전술과 전략 능력을 보일 지는 아직 베일에 쌓여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초보답지 않은' 선수단 장악 능력은 충분히 인정해 줄만하다.

추 감독은 "플레이오프는 워낙 많이 치러봤다"고 했다. 선수 시절 그는 수많은 우승을 일궈냈다. 지도자와 선수로서 플레이오프는 완전히 다르다. 이 부분을 모르는 추 감독이 아니다. 초보 사령탑으로서 '경험의 공백'은 어쩔 수 없다. 추 감독이 이렇게 강조한 이유 중 하나는, 최대한 자신의 약점을 없애고, 기 싸움에 뒤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에밋에 대한 언급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KCC의 약점 중 하나는 과도한 '에밋의 의존도'다. 팀 사이클이 좋지 않을 때 흔히 나타난다. 추 감독은 "정규리그 동안 더블팀, 트리플 팀까지 당한 에밋이다. 본인 스스로가 이런 상황에 적응됐다. 워낙 잘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믿고 가야 한다"고 했다.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의 농담섞인 '공격'에 웃고 있는 오리온 추일승 감독. 사진제공=KBL
모비스 vs 오리온=양팀 감독 설전의 의미는?

"있는 대로 얘기할 뿐"이라고 매번 말하는 모비스 유재학 감독. 항상 미디어데이에서는 능수능란한 입담이 있다. 지난 시즌 미디어 데이 때는 김주성에 대해 "너무 많이 뛰면 곧바로 은퇴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했고, "윤호영은 포스트 업 공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동부와 기싸움을 했다. 실제 경기력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리그의 대부분 선수들은 미세한 약점들이 있다. 코트 안에서 이 부분을 공략하는 전술을 많이 사용한다. 문제는 이런 약점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면, 실제 경기력에서 미세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 부분을 신경 쓰다보면 템포나 집중력에서 문제가 생긴다.

즉, 유 감독의 미디어데이의 발언은 상대 약점을 콕 짚으면서, 기싸움과 나아가 실전에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오리온 추일승 감독이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유재학 감독이 내려올 때가 됐다"고 말한 상태.

유 감독은 "2주 넘게 오리온 상대로 준비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6강 시리즈가 열리기 전부터 오리온이 4강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알고 있었다는 의미. 그는 "추 감독이 '유 감독이 내려올 때가 됐다'고 햇는데,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추 감독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플레이오프 준비를 하면서 모비스에 초점을 뒀다. 유 감독이 뭘 할 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준비를 했다"고 응수했다. 여기에 애런 헤인즈가 모비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헤인즈가 없더라도 전력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헤인즈는 오리온의 실질적 에이스. 하지만 유 감독은 헤인즈의 봉쇄법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즉, 헤인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오리온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즉, 추 감독은 헤인즈의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각오와 함께, 모비스가 설령 헤인즈를 잡더라도 나머지 포지션에서 우위를 가져가면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유 감독은 구체적 점수대를 얘기했다. 오리온이 모비스전 평균 득점은 77점 정도다. 70점대 초반으로 막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구체적인 수비 전술에 대한 계산이 끝난 듯한 뉘앙스. 그러면서도 심리적으로 "내가 내려가야 하는 것도 맞지만, 추일승 감독이 꼭 올라와야 한다. 심리적으로 많은 압박이 될 것"이라고 '역공'을 펼쳤다. 올 시즌 계약이 만료되는 추 감독 입장에서는 4강 진출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찌른 압박용 멘트.

하지만 추 감독 역시 능수능란했다. 그는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모비스 진출은) 식상하다. 언제까지 양동근 선수가 MVP를 할 것인가. 이승현이 갈아치워서 빨리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양 팀 사령탑 모두 상대의 약점에 대한 정곡을 주고 받은 셈. 베테랑 사령탑 답게 두 감독의 시리즈 플랜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유 감독은 "두 외국인 선수(잭슨, 헤인즈)를 정상적으로 막긴 힘들다. 우리가 막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오리온의 선수층도 두텁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수비를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즉, 두 외국인 선수에게 다득점을 허용해도, 오리온이 가장 두려워하는 외국인 선수와 토종선수들의 단절현상을 이끌어내는 수비전술을 세밀하게 가동하겠다는 의미.

추 감독은 "양동근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모비스의 조직력 자체가 매우 탄탄하기 때문에 많은 득점을 하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모비스 양동근의 절대적 의존도에 대한 균열과 함께 상대의 수비력에 대한 '닥공' 전술은 쉽지 않다는 의미였다. 신사동=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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