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데이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다. 플레이오프라는 축제의 장. 거기에 초대된 선택받은 네 팀만이 초청된다.
이런 여유로움 속에서도 사령탑과 선수들은 여러가지 생각에 잠긴다. 웃는 얼굴로 무대에 앉았지만, 하루 뒤부터는 처절하게 싸워서 넘어뜨려야 하는 상대다. 때문에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미디어데이 특성상 어느 정도 시리즈 구상이나 용병술, 그리고 각오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적당히 가리거나, 연막을 치는 센스도 필수적이다.
|
하지만 이날 "이겨도 괜찮고, 져도 괜찮다 농구 팬이 명승부였다고 인정하는 경기를 펼치고 싶다"고 했다. 단지, 정규리그 1위 KCC를 맞아 도전하는 입장에서 건넨 겸손함이었을까.
KGC는 완벽한 도전자다. 네 팀 중 가장 그렇다. 심리적으로 '도전자'는 편안하다. 이런 심리적 편안함을 드러내면서, KCC에 부담을 가중시키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여기에 KGC를 둘러싸고 있는 몇 가지 불명확하면서도 마뜩치 않은 '여론'들이 있다. 예를 들어 KGC의 터프한 수비를 '더러운 농구'로 몰아세운다거나, 몇몇 선수의 '오버 액션'에 대한 플라핑 논란이다. 이런 논란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가 담긴 김 감독의 말이다. 그는 "수비는 터프하게 하는 게 맞는 것이다. 아무렇게 주는 건 농구가 아니다. 4강전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KCC 디펜스도 터프하다. 재미있는 경기를 하고 싶어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라고 했다. 곰곰히 곱씹을 필요가 있는 멘트다.
KCC 추승균 감독은 플레이오프가 지도자로서 첫 무대다. 당연히 낯설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여기에 KCC 하승진이 "(선수단은) 감독님을 비롯해 코칭스태프를 100% 신뢰한다"는 발언은 의미가 있다. 추 감독이 초보 사령탑이지만, 그를 중심으로 개성 강한 선수들이 똘똘 뭉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 하승진과 전태풍은 부상이 없는 시즌을 치렀다. 그만큼 비 시즌 준비가 효율적이었다는 의미. 추 감독이 플레이오프에서 어떤 전술과 전략 능력을 보일 지는 아직 베일에 쌓여 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초보답지 않은' 선수단 장악 능력은 충분히 인정해 줄만하다.
추 감독은 "플레이오프는 워낙 많이 치러봤다"고 했다. 선수 시절 그는 수많은 우승을 일궈냈다. 지도자와 선수로서 플레이오프는 완전히 다르다. 이 부분을 모르는 추 감독이 아니다. 초보 사령탑으로서 '경험의 공백'은 어쩔 수 없다. 추 감독이 이렇게 강조한 이유 중 하나는, 최대한 자신의 약점을 없애고, 기 싸움에 뒤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에밋에 대한 언급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KCC의 약점 중 하나는 과도한 '에밋의 의존도'다. 팀 사이클이 좋지 않을 때 흔히 나타난다. 추 감독은 "정규리그 동안 더블팀, 트리플 팀까지 당한 에밋이다. 본인 스스로가 이런 상황에 적응됐다. 워낙 잘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믿고 가야 한다"고 했다.
|
"있는 대로 얘기할 뿐"이라고 매번 말하는 모비스 유재학 감독. 항상 미디어데이에서는 능수능란한 입담이 있다. 지난 시즌 미디어 데이 때는 김주성에 대해 "너무 많이 뛰면 곧바로 은퇴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했고, "윤호영은 포스트 업 공격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동부와 기싸움을 했다. 실제 경기력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리그의 대부분 선수들은 미세한 약점들이 있다. 코트 안에서 이 부분을 공략하는 전술을 많이 사용한다. 문제는 이런 약점이 공개적으로 노출되면, 실제 경기력에서 미세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 부분을 신경 쓰다보면 템포나 집중력에서 문제가 생긴다.
즉, 유 감독의 미디어데이의 발언은 상대 약점을 콕 짚으면서, 기싸움과 나아가 실전에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오리온 추일승 감독이 4강 진출을 확정지은 뒤 "유재학 감독이 내려올 때가 됐다"고 말한 상태.
유 감독은 "2주 넘게 오리온 상대로 준비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6강 시리즈가 열리기 전부터 오리온이 4강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알고 있었다는 의미. 그는 "추 감독이 '유 감독이 내려올 때가 됐다'고 햇는데, 사람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추 감독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플레이오프 준비를 하면서 모비스에 초점을 뒀다. 유 감독이 뭘 할 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준비를 했다"고 응수했다. 여기에 애런 헤인즈가 모비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헤인즈가 없더라도 전력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헤인즈는 오리온의 실질적 에이스. 하지만 유 감독은 헤인즈의 봉쇄법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즉, 헤인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오리온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즉, 추 감독은 헤인즈의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각오와 함께, 모비스가 설령 헤인즈를 잡더라도 나머지 포지션에서 우위를 가져가면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유 감독은 구체적 점수대를 얘기했다. 오리온이 모비스전 평균 득점은 77점 정도다. 70점대 초반으로 막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구체적인 수비 전술에 대한 계산이 끝난 듯한 뉘앙스. 그러면서도 심리적으로 "내가 내려가야 하는 것도 맞지만, 추일승 감독이 꼭 올라와야 한다. 심리적으로 많은 압박이 될 것"이라고 '역공'을 펼쳤다. 올 시즌 계약이 만료되는 추 감독 입장에서는 4강 진출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찌른 압박용 멘트.
하지만 추 감독 역시 능수능란했다. 그는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서라도 (모비스 진출은) 식상하다. 언제까지 양동근 선수가 MVP를 할 것인가. 이승현이 갈아치워서 빨리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양 팀 사령탑 모두 상대의 약점에 대한 정곡을 주고 받은 셈. 베테랑 사령탑 답게 두 감독의 시리즈 플랜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유 감독은 "두 외국인 선수(잭슨, 헤인즈)를 정상적으로 막긴 힘들다. 우리가 막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오리온의 선수층도 두텁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수비를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즉, 두 외국인 선수에게 다득점을 허용해도, 오리온이 가장 두려워하는 외국인 선수와 토종선수들의 단절현상을 이끌어내는 수비전술을 세밀하게 가동하겠다는 의미.
추 감독은 "양동근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모비스의 조직력 자체가 매우 탄탄하기 때문에 많은 득점을 하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모비스 양동근의 절대적 의존도에 대한 균열과 함께 상대의 수비력에 대한 '닥공' 전술은 쉽지 않다는 의미였다. 신사동=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