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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농구단과 신동파, 필리핀의 특별한 인연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12-12 05:59


라울 헤르난데스 주한 필리핀 대사와 신동파 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김완태 LG 세이커스 농구단 단장(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은 최근 함께 한 자리에서 농구를 매개로 활발한 교류를 논의했다. 사진제공=LG 세이커스

지난 9월 9일 필리핀 마닐라 아라네타 콜리세움. 필리핀 전지훈련 중이던 남자 프로농구 LG 세이커스와 현지팀인 히네브라 산미겔의 친선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한 1만명의 관중이 한 노신사가 코트에 등장하자 함성을 지르며 기립박수로 맞았다. 필리핀인들에게 신동파 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70)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이날 신 전 부회장은 필리핀의 7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 LG 농구단이 신 전 부회장을 초청하면서 이뤄진 일이다.

지난 10월 1일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농구 필리핀과 몽골의 7~8위 순위 결정전. LG 김완태 단장(57)은 VIP석에서 우연히 한 외국인과 인사를 나누게 됐다. 라울 헤르난데스 주한 필리핀 대사(57)였다. 필리핀 전지훈련과 농구를 화제삼아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식사자리를 약속했다.



필리핀과 농구를 매개로 한 인연은 인연을 낳고,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최근 김완태 단장과 신동파 전 부회장, 라울 헤르난데스 대사는 후암동에 위치한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대화는 농구를 통해 이어졌다.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과 교류를 논의했고, 건설적인 대화가 오갔다. 헤르난데스 대사는 대학시절 농구 선수로 뛰었다며, 신 전 부회장을 "평소 존경해온 영웅"이라고 반겼다. 식사 약속이 잡힌 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이 사실을 SNS에 올렸다고 한다. 신 전 부회장은 헤르난데스 대사에게 최근 출간된 '득점기계 신동파, 우리 아버지 시대의 마이클 조던(허진석 지음·글누림)'을 선물했다.


신동파 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은 최근 자리를 함께 한 라울 헤르난데스 주한 필리핀 대사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선물했다. 사진제공=LG 세이커스 농구단
1960~1970년대 아시아 최고의 슈터로 이름을 떨친 신 전 부회장은 원조 한류 스타다. 특히 1969년 방콕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필리핀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필리핀과의 결승전에서 50점을 퍼부어 95대86, 9점차 완승을 이끌었다. 아시아 최강 필리핀을 꺾고 우승한 한국은 처음으로 아시아를 대표해 1970년 유고슬라비아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갔다. 신 전 부회장이 주포로 활약한 이 대회에서 한국은 4승4패를 기록하고 11위에 올랐다. 한국의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최고 성적이었다.

1974년 선수은퇴를 하고 40년이 흘렀는데도 필리핀인들의 머리에는 신 전 부회장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신 전 부회장은 "20대 젊은 필리핀 기자들에게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었고, 또 책에서 읽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아시아선수권 결승전 당시 한국은 방콕 현지에서 라디오 중계를 했는데, 필리핀은 TV로 생중계를 했다고 한다. 신 전 부회장은 "필리핀 교민을 통해 알았지만 당시 TV 영상자료를 찾지 못했다. 헤르난데스 대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한 번 나서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신동파 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이 지난 9월 필리핀에서 열린 LG 세이커스와 현지 팀 간의 친선경기에 앞서 시투에 나선 모습. 사진제공=LG 세이커스 농구단
김 단장은 이 자리에서 필리핀에서 '신동파컵 농구대회' 개최를 제안했다. 헤르난데스 대사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화답했다. 신 전 부회장에 따르면, 이전부터 필리핀교민회 차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 개최 논의가 있었다.

김 단장은 필리핀과 농구를 매개로 한 한차원 높은 구상을 하고 있다.

LG 농구단은 지난 9월 필리핀 전지훈련 기간에 5차례 친선경기를 통해 필리핀에 한국농구와 LG를 알렸다. 경기에 농구단의 모기업 주력사인 LG전자 현지 딜러, 고객, 소외계층을 초청했고, 또 LG전자 홈페이지를 통해 관전신청을 받아 주목도를 높였다.

김 단장은 정체돼 있는 남자 프로농구의 외연 확장을 고민해 왔다. 모기업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남자 프로농구가 도약하려면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현실에 안주할게 아니라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리핀 선수의 국내 영입도 검토해볼만 할 것 같다. 현재 외국인 선수가 2명까지 뛸 수 있는데, 아시아쿼터를 따로 두고 필리핀 선수를 포함해 아시아권 선수 영입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17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절대 다수가 아시아 출신이고, 필리핀 이주여성, 산업 노동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아시아 쿼터가 도입될 경우 선수의 출신 국가에 방송중계권료를 판매할 수도 있다. 물론, 각 구단 마다 입장차이가 있어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신 전 부회장도 "필리핀 농구 수준이 높지 않고, 프로구단 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이다"고 했다.


LG 세이커스가 지난 9월 필리핀 전지훈련 때 현지 팀과 친선경기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LG 세이커스 농구단
LG 농구단은 다각도로 프로농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이커스는 지난달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에서 우수 프로스포츠단상을 수상했다. 2013~2014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인 LG는 재미있는 경기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지난 1월 남자 프로농구 최초로 200만 관중에 돌파했다.

다른 시각으로 농구를 바라보는 LG와 필리핀의 인연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 지, 또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는 세이커스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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