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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 필리핀 마닐라 아라네타 콜리세움. 필리핀 전지훈련 중이던 남자 프로농구 LG 세이커스와 현지팀인 히네브라 산미겔의 친선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한 1만명의 관중이 한 노신사가 코트에 등장하자 함성을 지르며 기립박수로 맞았다. 필리핀인들에게 신동파 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70)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이날 신 전 부회장은 필리핀의 7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다. LG 농구단이 신 전 부회장을 초청하면서 이뤄진 일이다.
지난 10월 1일 화성종합경기타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남자농구 필리핀과 몽골의 7~8위 순위 결정전. LG 김완태 단장(57)은 VIP석에서 우연히 한 외국인과 인사를 나누게 됐다. 라울 헤르난데스 주한 필리핀 대사(57)였다. 필리핀 전지훈련과 농구를 화제삼아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식사자리를 약속했다.
필리핀과 농구를 매개로 한 인연은 인연을 낳고,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졌다. 최근 김완태 단장과 신동파 전 부회장, 라울 헤르난데스 대사는 후암동에 위치한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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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선수은퇴를 하고 40년이 흘렀는데도 필리핀인들의 머리에는 신 전 부회장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신 전 부회장은 "20대 젊은 필리핀 기자들에게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었고, 또 책에서 읽었다고 하더라"고 했다.
아시아선수권 결승전 당시 한국은 방콕 현지에서 라디오 중계를 했는데, 필리핀은 TV로 생중계를 했다고 한다. 신 전 부회장은 "필리핀 교민을 통해 알았지만 당시 TV 영상자료를 찾지 못했다. 헤르난데스 대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한 번 나서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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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단장은 필리핀과 농구를 매개로 한 한차원 높은 구상을 하고 있다.
LG 농구단은 지난 9월 필리핀 전지훈련 기간에 5차례 친선경기를 통해 필리핀에 한국농구와 LG를 알렸다. 경기에 농구단의 모기업 주력사인 LG전자 현지 딜러, 고객, 소외계층을 초청했고, 또 LG전자 홈페이지를 통해 관전신청을 받아 주목도를 높였다.
김 단장은 정체돼 있는 남자 프로농구의 외연 확장을 고민해 왔다. 모기업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남자 프로농구가 도약하려면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현실에 안주할게 아니라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리핀 선수의 국내 영입도 검토해볼만 할 것 같다. 현재 외국인 선수가 2명까지 뛸 수 있는데, 아시아쿼터를 따로 두고 필리핀 선수를 포함해 아시아권 선수 영입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17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절대 다수가 아시아 출신이고, 필리핀 이주여성, 산업 노동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아시아 쿼터가 도입될 경우 선수의 출신 국가에 방송중계권료를 판매할 수도 있다. 물론, 각 구단 마다 입장차이가 있어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신 전 부회장도 "필리핀 농구 수준이 높지 않고, 프로구단 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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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각으로 농구를 바라보는 LG와 필리핀의 인연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 지, 또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는 세이커스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