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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길었던 3-2 드롭존, '만수'의 딜레마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4-09-28 11:27


27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2014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한국과 필리핀의 경기가 열렸다. 한국 유재학 감독이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인천=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4.09.27.

한국은 큰 산을 하나 넘었다. 27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리그 2차 필리핀전에서 97대95로 승리했다.

16점 차를 극복한 짜릿한 역전승. 자칫 이날 패했을 경우 3차전 카타르와의 경기도 쉽지 않았던 상황. 카타르는 8강리그 1차전에서 필리핀을 77대68로 제압한 이번 대회 최대의 복병.

때문에 4강 탈락의 위험성도 존재했던 경기였다. 경기가 끝난 뒤 유재학 감독은 "정말 힘든 경기였다"고 했다.

필리핀전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있다. 필리핀 가드진의 맹활약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처절하게 당했다.

그나마 진천선수촌에서 연마했던 빅맨들의 외곽 수비력 향상 때문에 끝까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점은 소득이다.

유재학 감독의 별명은 '만수(만가지 수)'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치밀한 패턴과 경기 플랜을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 상대의 자그마한 틈을 찾아내 철저하게 공략한다. 철저한 준비 속에서 '맞춤형 전술'과 경기 중 임기응변이 대단한 지략가다.

그는 일찌감치 필리핀전을 대비, 3-2 드롭존(3명이 앞선, 2명의 뒷선에 서는 3-2 지역방어의 변형. 앞선 가운데 빅맨을 배치, 골밑에 순간적으로 헬프를 들어가는 수비방법)을 준비했다.

확실히 농구월드컵 선전으로 필리핀 선수들의 기량과 심리적 자신감은 대단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 1대1 대인마크를 하다가 필리핀의 테크닉에 밀렸다. 7-17로 뒤진 1쿼터 4분43초, 결국 유 감독은 준비했던 3-2 드롭존을 꺼내들었다.


이런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실제 3-2 드롭존을 펼친 뒤 필리핀의 공세는 일시적으로 차단됐다. 1쿼터 4분43초부터 8분44초 사이에 필리핀은 득점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문태종의 연속 득점으로 16-17, 경기의 균형을 맞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필리핀 가드진은 3-2 드롭존에 완벽하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내외곽에 1~2차례 패스나 가드진의 골밑 돌파 후 좌우에 포진된 슈터들에게 3점포 기회를 만들었다. 빈 틈이 보이면 과감하게 그대로 3점포를 던지기 위해 올라가기도 했다.

3-2 드롭존의 약점 중 하나는 정중앙과 좌우 날개의 3점포 찬스가 난다는 점이다. 정중앙 3점포의 경우, 유 감독은 "필리핀 가드진이 스크린을 받고 3점슛 기회를 노릴 때 처음부터 빅맨이 밀착마크로 그런 가능성을 없애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2차례 순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빅맨들의 집중력이 아쉬웠던 부분.

좌우 코너에서의 3점슛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어떤 지역방어를 사용해도 나타날 수 있는 약점. 유 감독은 필리핀 가드진의 활동력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패스워크에 의한 좌우 날개의 3점포는 어쩔 수 없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그런데 필리핀의 외곽포는 예상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짐 알라팍과 앨런 챈, 알프레드 테노리오가 과감하게 올라간 3점포는 전반 대부분 림에 꽂혔다.

때문에 3-2 드롭존에 대해 '완전한 실패'로 단정짓기는 힘들다. 유 감독이 경기 후 얘기했던 "3-2 드롭존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세밀한 실수와 필리핀의 엄청난 슛 감각이 겹쳐진 부분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의문이 여기에서 생긴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3-2 드롭존을 사용했을까. 통상적으로 지역방어는 길게 쓰지 않는다. 특히 3-2 드롭존과 같은 특이한 형태의 지역방어는 승부처에 2~3차례 꺼내드는 게 정상적이다. 유 감독은 "경기 전 대인방어는 쉽지 않다고 예상했었다"고 했다. 당연한 결론이다. 필리핀 가드들의 노련한 움직임과 능수능란한 테크닉을 고려하면 그렇다.

경기가 시작되면 처음부터 지역방어를 쓸 순 없다. 일단 대인방어로 시작한 뒤 적절한 시점에 수비를 바꾸는 게 정석이다.

그는 "경기 시작 이후 필리핀의 패턴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는데, 대인방어에서 처음부터 수비 움직임이 어긋났다. 그래서 더욱 3-2 드롭존을 버리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결국 경기 초반부터 대인방어가 통하지 않자, 유 감독은 1쿼터 중반부터 3-2 드롭존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필리핀의 3점포 공세에서도 대인방어로 바꿀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자칫 어설픈 대인방어는 필리핀 가드진에게 더욱 많은 공격 찬스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 부분은 필리핀과 한국의 테크닉 수준 차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상적인 대인방어로 막기가 힘들어지는 상황. 때문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더라도 필리핀 가드진의 활동폭을 최대한 좁히는 전술을 쓸 수밖에 없는 한국농구의 딜레마가 숨어있다. 결국 한국농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가드진의 테크닉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당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다시 한번 도출한 필리핀전이었다. 인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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