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후보작

스포츠조선

WC와 아시안게임 이상한 이분법, 패배주의가 문제다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4-07-07 12:47


한국남자농구 대표팀 훈련장면. 사진제공=KBL

최근 남자농구 대표팀을 두고 미묘한 분위기가 있다.

남녀 대표팀은 올해 두 개의 빅 이벤트를 두고 있다. 남자는 세계선수권대회 격인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여자는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이다.

여자의 경우 분리가 불가피하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의 일정이 겹친다.

세계선수권대회는 9월27일부터 10월5일까지 터키에서 열린다. 아시안게임은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인천에서 개최된다. 때문에 대표팀을 1, 2진으로 구분, 아시안게임에 최정예 멤버가 나선다.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하지만 남자는 좀 다르다. 8월30일부터 9월14일까지 스페인에서 농구월드컵이 열린다. 1~2주일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런데 국내 대부분의 농구관계자들은 이상한 이분법에 휩싸여 있다. '농구월드컵에서 집중할 것인가, 아시안게임에 집중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병역혜택이 걸려있는, 그리고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은 아시안게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얘기한다. 안방에서 열리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더욱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사실 농구월드컵에서 대표팀 전력을 시험, 업그레이드시킨 뒤 아시안게임에 나서자는 논리는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마치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사이에 1~2주 정도 휴식기밖에 없다는 점. 컨디션 조절이라는 문제다. 두번째로 어차피 농구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전력을 볼 때 1승도 거두기 힘들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기계적인 이분법은 매우 위험하다. 대부분 농구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생각과 달리 전혀 현실적이지도 않다. 여기에는 강력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 농구계 전반에 깔려있는 패배주의와 직결된다.

일단 대표팀의 훈련 상황을 살펴보자.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팀 전체의 객관적인 전력을 높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김종규 이종현 이승현 등 '빅맨'들의 포워드화가 가장 큰 증거다. 유 감독은 지난 아시아선수권대회 4강전 필리핀과의 경기를 잊지 못한다. 필리핀 가드진의 현란한 테크닉에 빅맨들의 외곽수비는 괴멸됐다. 결국 2대2 공격을 연거푸 허용했다. 가드진과 빅맨들의 스위치 디펜스가 좋지 않았기 때문. 이것은 토종 센터들의 허술한 외곽수비능력이 가장 큰 이유다.

대표팀에서 그동안 했던 가드와 센터의 1대1 연습, 매일같은 반복하는 풀 코트 프레스 등은 기본적으로 포지션 구분없이 강력한 수비를 하겠다는 의미다. 유 감독이 승부처에서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 1-3-1 지역방어 역시 압박과 트랩을 대표하는 전술이다. 즉, 어떤 상대와 만나든 한국의 팀 컬러를 공격적인 수비로 가져가겠다는 얘기다. 대표팀이 가고 있는 방향은 올바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은 위험성을 동반한다. 많은 변화 때문에 생기는 숙련도가 가장 큰 문제다. 실제 진천에서 열린 연습경기에서 대표팀은 기본적인 1대1 수비는 준수했지만, 1-3-1의 조직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즉, 더욱 많은 시간동안, 더욱 강한 상대에게 대표팀의 무기를 시험가동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현실적으로 농구월드컵만큼 좋은 무대는 없다.

따라서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농구월드컵을 절대로 버려서는 안되는 무대다. 농구월드컵에 총력을 기울일 경우 엄청난 시너지 효과도 있다. 아마시절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양동근은 모비스에서 정상급 가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마인드까지 완벽히 최고로 올라서는데는 첫번째 대표팀 경험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양동근은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에는 '내가 정말 잘하는 국내 최고의 가드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대표팀에서 같이 생활하고 부딪쳐본 뒤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실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양동근의 의미있는 경험을 대표팀에 뽑히는 대학선수들에게 대입해 보자. 그동안 한국에서 국제대회가 거의 열리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의 경험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농구월드컵에서 세계정상급 선수들과 직접 부딪쳐 본다면.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면 자신감을, 깨져도 신선한 자극과 많은 경험을 얻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배우는 게 많다. 대표팀 선수들이 의미있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농구의 국제경쟁력 자체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현실적인 두번째 이유도 있다. 한국농구계 전반에 깔려있는 패배주의 극복의 기회다.

대부분의 농구원로들은 '한국농구는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불가능하다'은 인식이 팽배하다. 그들이 유럽이나 미국농구를 견학한 뒤 내뱉는 감탄사 중 대부분은 "유럽이나 미국은 2m5가 넘는 슈터들이 많다"거나 "키가 커서 패스가 머리 위에서 위로 날아다닌다"와 같은 얘기들이다.

답답한 결론이다. 계속 강조하지만, 세계농구의 흐름은 높이가 아닌 기술과 스피드로 넘어온 지 꽤 됐다. 때문에 강력한 센터보다 높이와 스피드, 그리고 운동능력을 갖춘 포워드들이 중심이 되는 농구가 대세다. 그들은 정교한 부분전술로 공간과 슈팅기회를 창출, 상대의 약점을 꿰뚫는다. 현대 농구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한국농구가 세계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신체적인 한계가 아닌, 기술과 테크닉의 문제가 더욱 크다. 그들의 감탄사에서 포함된 것은 뿌리깊은 패배주의다.

한 농구 전문가는 "국제대회를 할 필요가 있나. 자국리그만 활성화되면 되는 게 아닌가"라는 발언도 했다. 이런 패배주의의 악영향은 엄청나다. 한국에서 그동안 국제대회 개최가 거의 없었던 가장 강력한 이유다.

한국농구가 의미있는 경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08년 올림픽 예선 슬로베니아, 캐나다전. 2012년 도미니카전. 당시 한국은 선전에 선전을 거듭했다. 2012년 도미니카는 NBA 정상급 센터 알 호포드가 버티고 있었던 팀이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 속에서 전혀 의미있는 교훈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

여전히 한국 대표팀은 세계무대에서 약체다. 건강한 유소년 시스템도 없고, 확실한 기술을 가진 에이스도 없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1승을 거둘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대표팀의 약점과 한계를 정확하게 도출해 내는 일이다. 농구월드컵에서 치열해야 아시안게임에서도 승산이 있다. 아니, 기본적으로 한국농구가 건강해진다. 하나만 반문해 보자. 한국농구가 언제 대표팀에게 총력을 기울인 적은 있었나?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