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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학 감독은 호랑이?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3-09-08 07:35


 ◇모비스 유재학 감독 LA=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너 나와!"

8일(한국시각) 모비스의 미국 전지훈련 연습경기가 열린 LA 베테랑스 스포츠 파크. 1쿼터 시작하자마자 유재학 감독이 팀의 주축인 문태영과 리카르도 라틀리프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끝까지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완패. 현역 NBA 선수이자 키 2m13의 센터인 라이언 홀린스(LA 클리퍼스)를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 감독에게 연습경기 승패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유재학 감독은 호랑이 감독?

유 감독 하면 '만수'라는 상징적인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또 하나 느껴지는 것이 바로 카리스마다. 좀처럼 흥분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면서 어떤 순간에도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특히, 성실하지 못하거나 겉멋이 든 선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유 감독은 "감독이 선수들을 장악하지 못하고 휘둘리기 시작하면 그 팀의 미래는 없다"라는 철학을 강조했다. 선수라면 누구라도 예외가 없다.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기 전 국가대표팀은 최종 12인의 엔트리 선발 전에 24명의 선수를 먼저 선발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했다. 그런데 한 선수가 러닝 훈련 중 손으로 라인을 터치하라는 지시를 건성으로 듣고, 끝까지 터치하지 않는 모습이 유 감독의 눈에 발각됐다. 그 선수는 즉시 짐을 싸서 선수촌을 떠나야 했다. 유 감독은 "훈련 중 조금이라도 멍한 모습을 보이면 난 바로 체육관에서 쫓아낸다. 그 선수 하나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LA 전지훈련에서도 유 감독의 카리스마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8일 열린 미국 전지훈련 마지막 연습경기. 앞선 3경기는 상대 멤버가 약했다면 이번 경기에는 현역 NBA 선수 2명이 가세하는 등 전력이 한층 업그레이드 돼 힘든 경기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 감독은 경기 시작 후 곧바로 라틀리프와 문태영을 빼버렸다. 그리고 다시 투입시키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경기 후 만난 유 감독은 "문태영이 슛만 던지려 하고 수비는 하지 않았다. 그런 선수는 필요없다. 앞으로도 같은 모습이면 절대 투입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라틀리프는 무릎이 조금 좋지 않다는 이유가 덧붙여졌지만 사실상 무리한 공격 욕심을 부리다 유 감독의 눈밖에 났다. 혼혈, 외국인 선수도 유 감독의 눈에는 똑같은 선수 중 한 명일 뿐이다.

무섭기만 하다고? 사실은 부드러운 남자

그렇다고 유 감독을 무섭기만 한, 그리고 농구밖에 모르는 천생 감독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강렬한 카리스마 속에 따뜻한 모습도 감추고 있는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이기도 하다.


특히, 가족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다. 유 감독은 2000년 아내와 두 자녀를 LA로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았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벌써 13년. 큰 아들 선호군은 벌써 대학을 졸업했고, 딸 선야양도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유 감독은 "예년 같았으면 시즌을 마치고 한 달 정도 가족과 미국에 함께 있었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국가대표 일정 때문에 아들 졸업식이 있던 때 2박3일 일정으로 가족을 만나고 온 게 전부"라고 밝혔다. 그래서 유 감독에게 LA 전지훈련은 남다르다. 시간을 쪼개 가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일상 공과사는 엄격하게 구분한다. 훈련 일정 동안은 철저하게 선수단과 함께 한다. 모든 훈련 일정을 마친 후 숙소에서 40분 거리인 집으로 퇴근해 그제서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8일 연습경기를 마친 후 선수단 회식에 가족을 초대해 식사를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일반 가족과 다름없었다. 특히,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외식을 하는 두 자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유 감독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통신 시설이 좋지 않은 나라에 국제대회를 나가 정말 통화가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족과 통화를 해왔다. 와이프가 중간 역할을 그동안 너무 잘해줬다"며 따뜻한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에게 호통을 치고, 다그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자식같은 선수들이 잘되기 만을 바래서다. 유 감독은 "선수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유 감독은 "우리 팀은 단 한 번도 남들이 볼 때 좋은 멤버라고 할 수 있던 적이 없었다. 결국,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선수들이 잘하는 플레이 만을 중점적으로 하게 만드는 것 뿐이었다. 결국 나 때문에 선수들의 창의성이 죽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승리를 거두고, 선수들이 잘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모비스 전력의 절반 이상은 감독의 힘'이라는 평가에도 손을 내저었다. 전략, 전술은 어느 감독이든 다 비슷하다고 했다. 그저, 선수들이 잘 따라줬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유 감독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만수'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시는데 들으면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LA=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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