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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챔프전에서 가장 갑갑한 사람은 아마 SK 문경은 감독일 것이다.
교묘한 심리전이 섞였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에 문 감독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유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를 맞아 SK는 홈에서 1, 2차전을 내줬다. SK가 자랑하던 애런 헤인즈와 김선형이 꽁꽁 묶였다. 경기내용은 대등했지만, 전술적으로 모비스가 앞섰다.
확실히 SK가 준 3차전의 변화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어떤 변화를 줬고, 그 판단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실패했을까. SK가 현재 가지고 있는 딜레마와 일맥상통한다.
버렸던 1가드-4포워드, 장착한 투 가드 시스템
1, 2차전을 통해 모비스는 확실한 '헤인즈 봉쇄법'을 만들었다. 골밑 2m 지점에 트랩 디펜스를 설치했다. 헤인즈가 좋아하는 위치(좌우 45도)에서는 밀착마크, 베이스 라인과 중앙에서는 수비법을 달리하며 위력을 떨어뜨렸다. 확실히 잘 단련된 모비스의 수비 조직력과 순간순간의 간격 조정, 그리고 트랩디펜스의 숙련도가 아우러진 좋은 수비전술이었다.
약점이 있었지만, 깨지 못했다. 모비스의 더블팀이 들어올 때 외곽의 찬스, 그리고 트랩을 가동했을 때 반대편 골밑 사이드의 빈 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모비스는 공간을 최소화하는 유기적인 호흡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헤인즈는 그 빈틈을 공략하지 못했다.
SK로서는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어떤 식으로 주느냐다. 상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다. 게다가 SK의 변화에 대해 많은 준비와 순간순간의 대처법을 갖춘 사령탑.
빠른 패스를 통한 외곽슛 찬스, 그리고 베스트 5 중 김민수와 박상오가 외곽포를 가동해줘야 하는 상황. 하지만 실전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2차전에서 박상오와 김민수는 무득점에 그쳤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투 가드 시스템이었다. 3차전에서 SK는 1가드-4포워드 시스템을 버리고, 주희정 변기훈의 출전시간을 늘리며 김선형과 함께 투 가드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해가 가는 선택. 모비스 역시 원활하게 SK의 대인방어나 3-2 드롭존을 깨지 못하고 있는 상황. 1차전에서 모비스는 경기 초반 3-2 드롭존에 고전했고, 2차전에서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득점은 60점에 그쳤다. 문 감독은 "공격이 문제다. 외곽포가 터져야 한다"고 했다. 간단했지만, 이유가 있었던 발언이다. SK가 챔프전 시리즈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공격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
따라서 모비스의 수비는 너무나 탄탄했지만, SK 입장에서는 약점을 어떻게든 만들어야 했다. SK는 모비스의 원활한 로테이션 수비에 주목했다. 4일에 3경기를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당연히 체력적인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골밑에서 외곽으로 패스만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모비스의 외곽수비 약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주희정은 1, 2차전을 통해 4개의 3점슛을 던져 3개를 성공시켰다. 외곽슛 감각이 가장 좋았다. 여기에 변기훈은 SK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슈터.
투가드 시스템을 가동한다면 매치업의 우위는 없지만, 모비스 외곽수비의 허점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라인업이 형성된다. 결국 3차전에서 SK의 가장 큰 변화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1가드 4포워드 시스템을 버리고 정착한 투 가드 시스템이었다.
SK의 딜레마, 전술의 완성도는 숙련도
3차전에서 SK의 외곽포는 너무 부진했다. 슛 찬스는 있었지만 적중률이 형편없었다. 3쿼터까지 10개 시도해 단 하나도 들어가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16개를 던져 단 하나의 성공, 3점슛 성공률은 6%였다.
믿었던 변기훈은 7개를 쏴서 단 1개를 넣는데 그쳤다. 주희정도 2개를 던졌지만, 단 하나도 넣지 못했다. 외곽슛 찬스는 있었다. 그리고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단적인 예가 코트니 심스를 투입했을 때다. 심스의 외곽패스는 반대쪽 사이드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로테이션을 갖춘 모비스의 외곽도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반 패스미스도 있었지만, 볼이 반대방향으로 갔을 때 모비스의 수비는 미묘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비스의 대처법은 세밀했다. 3차전이 끝난 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SK 선수들의 슈팅 스타일을 알고 있다. 슛을 쏘기 직전 왼발 혹은 오른발을 먼저 놓고 쏘는 것을 선호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다. 로테이션 수비를 할 때 그 선호하는 위치를 순간순간 흐트러뜨리는 위치로 마크할 것을 지시했고, 결국 상대의 외곽슛 적중률을 떨어뜨리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이런 수비법만으로 SK의 저조한 외곽슛 성공률을 모두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체력적인 부담이 많은 상황에서 리듬이 미세하게 일그러진 급박한 상황의 슈팅은 확실히 부정확했다.
결국 SK의 투 가드 시스템은 의미있는 선택이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여기에 또 하나 변화의 지점이 있었다. 헤인즈나 김민수가 45도 지점에서 공을 잡을 때 SK는 변화된 공격패턴 하나를 선보였다. 공을 잡는 타이밍에 맞춰 최부경이나 김민수가 골밑 1m 지점에 들어가 볼을 받아 골밑공격을 하는 것이다. 즉 헤인즈와 최부경, 혹은 김민수와 최부경이 골밑에서 순간적인 2대2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다.
의도는 좋았다. 모비스의 트랩 디펜스의 약점, 즉 반대편 사이드의 골밑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전술. 하지만 숙련도가 문제였다. 좁은 공간에서 절묘한 타이밍에 뿌려줘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결국 패스미스가 많아졌고, 쉽게 모비스에게 공격권을 넘겨줬다.
사실 그런 시도를 SK가 정규리그에서 많이 했어야 했다. 승부처에서 헤인즈나 김선형의 1대1 개인기가 아닌, 김민수 최부경 박상오 등의 유기적인 플레이로 연결시켜주는 조직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SK는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사실 올 시즌 SK는 정규리그에서 승승장구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모래알 조직력의 대명사였다. 수비가 약했던 김민수에게 적합한 3-2 드롭존을 만들고 정규리그 1위를 수성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더 많은 변화가 발전보다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었다. 정규리그 1위의 자신감을 그대로 챔프전까지 끌고가는 것이 우승에 더 유리한 조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딜레마를 극복한 모비스를 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유기적인 플레이가 필요했다. 3차전 SK의 변화는 의미가 있었지만, 패배를 막진 못했다. 울산=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