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쿼터에만 파울 3개를 범한 함지훈이 2쿼터 2분 만에 4번째 파울을 범하고 벤치로 물러났다. 그 시점까지 울산 모비스는 인천 전자랜드에 19-30으로 끌려갔다. 1차전과 달리 2차전은 일찌감치 전자랜드 쪽으로 승부가 기우는 듯 보였다.
하지만 모비스는 함지훈이 벤치로 물러난 이후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신했다. 모비스는 함지훈이 빠진 2쿼터 2분경부터 함지훈이 다시 코트로 복귀한 3쿼터 8분경까지 16분여 동안 전자랜드의 혼을 쏙 빼놨다. 모비스는 그 16분 동안 무려 43-14로 앞섰고 사실상 승부는 전자랜드가 아닌 모비스의 승리로 기울었다.
이 날 경기에서는 김시래와 양동근 투가드 시스템의 위용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기록적인 부분을 살펴보면 두 선수가 기록한 15개의 어시스트는 전자랜드 선수단 전체가 기록한 11개의 어시스트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두 선수가 합작한 5개의 스틸은 전자랜드 선수단이 경기 내내 기록한 5개의 스틸과 동일했다.
기록적인 면만 살펴봐도 두 선수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경기 내용은 기록에 드러나는 그 이상이었다. 김시래와 양동근은 전자랜드의 가드진(이현민, 정병국, 정영삼, 차바위)을 거침없이 무너뜨렸다. 때로는 김시래가, 때로는 양동근이 공을 운반하며 공격을 감행했고 두 선수의 엄청난 수비와 스피드, 어시스트 능력 등으로 인해 전자랜드는 무려 7개의 속공을 헌납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날 모비스의 승리를 이끈 투가드 시스템이 정규시즌 중후반까지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정규시즌 초반부터 김시래와 양동근의 투가드 시스템을 고집한 유재학 감독은 두 선수가 엇박자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투가드 시스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루키 김시래가 양동근 없이 홀로 코트에 나설 때, 양동근 역시 김시래 없이 홀로 코트에 서서 포인트가드로 활약할 때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바람에 유재학 감독의 투가드 고집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순위 신인 김시래를 어떻게든 활용하려다보니 리그 최고의 가드인 양동근의 장점을 모두 묻히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재학 감독은 투가드의 활용을 위해 거듭 고민하고 실험했지만 딱히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했고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덧 시즌 막판에 이르렀다. 그런데 '만수'라 불리는 유재학 감독이 어떤 수를 써도 제대로 통하지 않던 투가드 시스템이 놀랍게도 어느 순간 자연스레 무서운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바로 모비스의 중심인 함지훈이 부상을 당하고부터다.
이번 시즌 유재학 감독은 분명 투가드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모비스에서 실질적인 포인트가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은 함지훈이었다. 함지훈의 골밑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재학 감독은 함지훈을 모비스 전술의 중심에 뒀다. 그리고 뛰어난 패싱 능력을 지닌 함지훈으로부터 파생되는 공격 루트를 주로 노렸다.
그러다보니 가드들의 역할은 극단적으로 제한되고 말았다. 가드들의 주된 역할은 상대팀 코트로 공을 운반한 이후 골밑에 버티고 있는 함지훈에게 공을 전달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가드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김시래와 양동근의 투가드 시스템은 전혀 시너지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2월 20일 KGC전에서 함지훈이 부상을 당한 이후 진정한 가드의 역할을 소화할 수 있게 된 김시래와 양동근은 무섭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모비스의 스피드는 그 어느 팀보다 빨라졌고 공의 전달 속도 역시 굉장히 빨라졌다. 어떤 이들은 투가드가 맹활약한 시기가 대다수의 팀들이 설렁설렁 경기를 펼친 시즌 막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지만 두 선수는 플레이오프에서도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며 최상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결국 4일 열린 2차전에서는 투가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와 투가드의 진정한 위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비스의 투가드가 시즌 내내 표류했던 이유는 그들끼리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것이 아닌 팀 전술의 중심인 함지훈과 투가드가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비스는 이 날 승리로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위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노리는 유재학 감독에게 주어진 진짜 숙제는 투가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아닌, 투가드와 함지훈의 역할을 어떻게 명확히 조정하느냐 라고 볼 수 있다. 가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김시래와 양동근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는 모비스다. <홍진표 객원기자, SportsSoul의 소울로그(http://blog.naver.com/ywam31)>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