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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인 문태종과의 대결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기자회견장에서 팀 통역이 해석해준 질문을 들은 모비스 포워드 문태영(35)이 피식 웃었다. 마치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다.
문태영이 '형제애'조차 잠시 뒤로 미뤄둘만큼 뜨거운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벌써 형을 한번 거꾸러트렸다. 문태영은 지난 2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전자랜드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0득점 5리바운드로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문태영과 외국인 선수 라틀리프(27득점 12리바운드)를 앞세운 모비스는 결국 82대63으로 크게 이기면서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향해 먼저 앞서나갔다.
반면, 전자랜드는 팽팽하게 맞서던 4쿼터 초반 갑작스럽게 조직력이 무너지면서 적지에서의 1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무엇보다 포웰과 함께 팀의 주득점원 역할을 해줬어야 할 문태종이 부진했다. 문태종은 이날 겨우 6득점 밖에 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 평균 13.5득점에 4.8리바운드를 하던 문태종이다. 문태종의 부진이 이날 전자랜드 패인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문태영이 전의를 활활 불태우는 이유는 따로 있다. 형과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지만 아직 단 한 차례도 해보지 못한 포스트시즌 승리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2009년에 처음으로 한국 무대를 밟은 문태영은 전 소속팀 LG에서 지난해까지 세 시즌을 뛰었지만, 포스트시즌 승리를 경험하지 못했다. LG가 2009~2010, 2010~2011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늘 3연패로 탈락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모비스로 팀을 옮긴 문태영은 그래서 1차전에 꼭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문태영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경기를 이겨봤다. 모든 동료들이 다 잘해줬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분명 승리에 대한 희열이 묻어나왔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길다. 두 번 더 이겨야 챔피언결정전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전자랜드 주득점원 문태종을 봉쇄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태영은 "지금은 형이 아니라 적이다. 객관적으로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득점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1점도 못넣게 하겠다"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정규리그 막판인 지난 3월, 문태영은 한층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3월 출전한 9경기에서 문태영은 경기당 17.8점 6.8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해 공헌도(253.3)에서 국내선수 1위(전체 3위)에 올랐다. 팀도 9경기를 모두 이겼다.
덕분에 상복도 터졌다. KBL 기자단 투표결과 '3월 월간 MVP'로 뽑혔고, 또한 '스포츠조선 제정 2012~2013 스포츠토토 한국농구대상' 3월 월간 MVP로도 선정돼 트로피와 상금 100만원까지 받게 됐다.
그러나 문태영이 상을 바라고 3월에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포스트시즌 첫 승을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 챔피언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 미리부터 몸상태를 끌어올린 것으로 봐야 한다. 문태영의 투지가 팀을 어디로 인도할 지 주목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