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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KT, 서장훈이 있기에...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2-11-05 09:47


서울 삼성과 부산 KT의 2012-2013 프로농구 경기가 24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KT 서장훈이 삼성 이동준의 수비를 피해 골밑슛을 시도하고 있다.
잠실실내=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2.10.24/



'빠름, 빠름, 빠름.'

세간에 유행하고 있는 이동통신사 KT의 광고 카피다. 요즘 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을 보면 이 카피에 딱 어울린다.

KT는 시즌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6강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에 걸맞게 부진을 면치 못했다. 지난달 18일 KGC전에서 3경기 만에 첫승을 건진 이후 4연패의 수렁에 빠지면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최근 3연승으로 반격을 시작, 지난 3시즌 연속 상위팀의 저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상승세가 '빠름'인 것이다.

나약하기 짝이 없었던 KT가 달라진 중심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역 최고령 서장훈(38)이 있다. 올시즌을 마지막 시즌으로 삼고 있는 서장훈이다.

흔히 이 나이가 되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출전시간을 보장받고 팀의 숨은 일꾼으로 명예롭게 떠날 준비를 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서장훈은 당당한 주전 멤버로 젊은 선수들 이상의 투혼으로 KT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그래서 '국보센터'라고 하는가 보다.

'국보센터'는 죽지 않았다

2012∼2013시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12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막바지 훈련중인 전창진 감독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지목한 이가 서장훈이었다. "신인선수 1명 더 있는 것 같다. 시즌 준비를 가장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곁들였다. 훈련 모습만 보더라도 그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백코트에 임하는 속도는 무척 빨라졌고 훈련중 눈치껏 어슬렁 쉬는 시간은 없어졌다. 고령에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잠깐 쉬는 시간이면 신인 장재석에게 원포인트 레슨까지 1인2역을 하고 있었다. 서장훈은 지난 5월 LG와의 재계약에 실패해 시장에 나왔을 때만 해도 딱히 불러주는 곳이 없어 조용히 사라져 갈 '퇴물'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 그에게 KT가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내밀자 연봉을 사회에 환원하고 1시즌만 더 뛰고 은퇴하겠다며 스스로에게 배수의 진을 쳤다. 개성이 강한 것으로 치면 선수 최강인 서장훈과 감독 최강인 전창진이 만나며 엇박자가 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KT에 녹아든 서장훈은 전 감독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됐고, 코트에서는 벌겋게 타오르는 석양이 됐다. 5일 현재 서장훈은 10경기 평균 23분4초를 뛰었는데도 평균 11.9득점, 4.2리바운드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LG에서보다 월등히 좋아졌고, 2년전 전자랜드의 전성기를 이끌 때와 비슷하다. 팀내에서는 단연 최고급이다. 전 감독이 "보면 알지 않느냐. 서장훈이 이렇게 열심히 뛰는 걸 본 적이 있느냐"고 흡족해 할 만하다.


'목장훈'에서 '눈장훈'으로

최근 서장훈에게 트레이드 마크가 하나 더 늘었다. 검정색 목보호대가 여전한 가운데 이마를 칭칭 감은 붕대가 생긴 것이다. 서장훈은 지난 2005년 2월 정규시즌 막판에 심각한 목부상을 했다. 손발이 저리는 마비 증세가 와 병원 신세를 졌지만 다행히 목뼈가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1994년 연세대 소속 농구대잔치 시절 같은 부위를 다쳐 1개월간 입원했던 기억때문에 6강 플레이오프 출전을 강행하면서 목보호대를 차기 시작했는데 7년째에 이른 것이다. 이런 서장훈을 두고 팬들은 '목장훈'이라고 불렀다. 부상 투혼을 벌이는 그에 대한 찬사의 의미보다 비아냥거릴 때 자주 '목장훈'이라고 불렀다. 워낙 독보적인 국내 센터였기에 은근히 시기하는 팬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서장훈은 개의치 않았다. 아프다는 걸 티내려고 보호대를 하는 게 아니라 사지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부상재발 위험 앞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호장치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SK전에서는 상대 선수와 부딪혀 왼쪽 눈 윗부분이 찢어지는 바람에 50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했다. 그런데도 그는 붕대를 감고 출전을 강행하고 있다. 눈부상 이후 28일 동부전까지 4연패를 찍었던 KT는 3연승으로 반전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최고참이 붕대를 감고 뛰는데 미치지 않을 후배들이 어디 있겠느냐"며 붕대투혼에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나이가 들면 조금만 불편해도 일단 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서장훈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잠자고 있던 KT 근성을 일깨웠다.

서장훈의 변신은 무죄

서장훈은 흔히 다른 팀 감독들로부터 "농구를 알고 하는 선수다"라는 인정을 받는 대표적인 선수다. 나이는 들었지만 특유의 농구센스는 명불허전인 것이다. 그의 올시즌 영리한 농구는 기록에서 잘나타난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고, 출전시간은 많지 않다 보니 득점과 리바운드 랭킹에서 20위 안에 드는 것은 무리다. 득점-리바운드 부문은 서장훈이 전성기 시절 상위권을 형성했던 단골메뉴였다. 하지만 의외의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3점슛이다. 평균 3점슛 갯수에서는 공동 10위(평균 1.5개), 성공률은 3위(48.39%)에 달한다. 3점슛 성공률 1위가 50%인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3점 슈터를 부끄럽게 하는 성적이다. 지난 2008∼2009시즌 전자랜드 시절 평균 1.6개의 3점슛을 기록한 이후 최고다. 서장훈은 센터이기 때문에 외곽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서장훈은 든든한 국보센터로 이름을 날렸지만 미들슛과 외곽슛 능력도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자주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다. 올시즌 '수비자 3초룰'이 폐지되면서 골밑을 공략하기 한층 어려워지자 외곽을 적극 활용하는 생존전력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외곽슛 커버가 약한 외국인 선수가 붙으면 3점슛을 시도하고, 반대로 국내 선수가 붙으면 포스트업을 하면서 불리해진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서장훈이 고감도 3점슛으로 상대의 포스트 수비요원을 유인하면 KT로서도 공격폭이 넓어질 수 있다. '3점슈터 서장훈'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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