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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스 최진수(23)는 삼일중 재학 시절부터 한국 농구의 미래로 불렸다. 삼일상고 시절 만 17세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농구 유학을 떠났다. 2008년 메릴랜드대학교에 입학해 한국인 최초 NCAA 디비전 1 선수까지 됐다. 탄탄대로였다.
성공적인 데뷔 시즌? 난 아직 멀었다
최진수는 지난 시즌 중반 이동준의 부상 이후 급성장했다. 오리온스는 최진수가 3번이냐, 4번이냐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지만, 공교롭게도 이동준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자연스레 그의 역할을 찾았다. 그는 지난 시즌 팀이 치른 54경기 모두 출전해 평균 14.4득점 4.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최진수는 "난 아직 농구를 알아서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겉도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팀이랑 연습경기를 하면 내가 원하는 플레이가 나온다. 하지만 프로팀과 붙을 땐 아직도 큰 벽을 느낀다"며 "프로에 온 뒤 경험에 있어 큰 차이를 느꼈다. 난 (김)동욱이형이나 (전)태풍이형처럼 흐름을 읽는 플레이가 아닌, 그저 잘 뛰고 많이 뛰는 플레이를 했을 뿐"이라며 자신을 돌이켜봤다.
잠시 뒤엔 급기야 "내가 망친 게임이 너무 많다"고 했다. 공수 모두 자신이 구멍이 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망설임 없이 이런 말을 내뱉는 그에게서 강한 자존심이 느껴졌다. 최진수는 "올림픽예선에 갔다 온 뒤 좀더 잘 하려는 욕심이 생겼다. 지난 시즌은 물론이고, 지금 연습경기들도 내가 망칠 때가 많은 것 같다. 아직도 다른 형들에 비해 게임을 읽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미국 농구? 롤 모델? 남을 살리는 농구하고 싶다
'미국 농구'는 최진수에겐 뗄 수 없는 꼬리표다. 미국 유학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안겨줌과 동시에 국내 프로무대에서 통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물음표를 붙여줬다, 최진수가 자신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린 이유도 미국 농구와 연관이 있다. 그는 "아직 내게 미국 농구 스타일도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일까. 최진수는 "우린 코트를 넓게 봐야 하는데 미국에선 1대1을 중시하는 등 주관적인 농구를 한다"며 "난 아직 우리 팀 선수를 살리는 농구를 못하고 있다.남을 살려주는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최진수에 대한 편견을 정면으로 깨는 발언이었다. 그는 이타적인 농구를 지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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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진수는 어떤 선수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4~5년 뒤라면 롤모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이유가 뭘까. 최진수는 "지금은 누구를 롤모델로 삼기엔 부적절한 것 같다. 팀은 매년 변화하고 재구성된다. 난 팀에 맞춰서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흔히 선수들은 자신의 농구관이 있고, 각자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진수는 "내 농구가 무엇인지 확립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로 오기 전에 좋아했던 동부 김주성의 플레이를 직접 보자 무작정 누구를 따라할 게 아니라 각자의 장점을 살리는 게 중요하단 걸 느꼈다고. 잠시 뒤 그는 "나도 주성이형처럼 내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뛰어야 할 것 같다. 또한 팀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가 먼저"라고 했다.
2년차 징크스-악성 댓글?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이젠 2년차 징크스를 고민해야 할 때다. 종목을 막론하고 훌륭한 첫 시즌을 보낸 뒤 2년차에 고전하는 이들이 많다. 생소함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사라지고, 이에 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해 무너지는 것이다. 최진수는 2년차 징크스에 대해 묻자 "당연히 의식하고 있다"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피해가기 보다는, 정면으로 부딪히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2년차 징크스가 괜히 만들어진 말은 아니지 않나. 나에게도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자신에 대한 댓글 등 세간의 평가를 적절히 이용한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들을 건 듣고 불필요한 건 안 듣지만, 실제 경기에서 못하면 자극제가 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2년차 징크스나 악성댓글은 그에게 적이 아니었다. 최진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다. 이런 걸로 날 채찍질하고, 보다 농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오세근과 라이벌 구도? 없는 것보다 낫다
포털사이트에서 최진수를 검색하면, 두번째로 나오는 연관검색어가 오세근이다. 하늘은 같은 해 데뷔한 둘을 라이벌로 갈라놨다. 누구 하나 몰락하지 않는 한 둘의 경쟁구도는 선수 생활 내내 계속될 것이다.
최진수는 오세근과의 라이벌 구도에 대해 "이런 구도가 생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히 답했다. 실제로 다른 선수 보단 오세근과 상대할 때 좀더 집중력이 생긴다고. 그는 "평생 라이벌 없이 홀로 지내다 은퇴하는 선수들도 많지 않나. 없는 것보다 훨씬 자극된다"며 "지난 시즌엔 워낙 각종 미디어에서 말도 많이 해주셨지만, 같은 신인 입장에서 지기 싫었다"고 밝혔다.
최진수가 생각하는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는 "세근이형은 수비 범위가 넓고 골밑 장악력이 좋다. 나보단 팀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잘 한다"고 했다. 이어 "난 그저 팀 디펜스를 하려고 노력한다. 볼이 없을 때 움직임이나 받아먹는 것, 4번에서 던지는 외곽슛 같은 건 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최진수와 오세근은 지난 시즌 코트에서 유독 신경전을 벌였다. 신인왕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가던 오세근이 최진수만 만나면 유독 발끈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최진수는 이에 대해 "코트 밖에선 서로 잘 어울린다"면서 "둘 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 놓지 않는 성격이다. 자기 분야에서 만큼은 지고 싶지 않아 한다"며 웃었다.
최진수의 또다른 목표는 "초반에 잘 하자"다. 지난해엔 시즌 초반에 고전하면서 중반 이후 상승세를 탔음에도 하위권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는 "태풍이형이 말한 것처럼 우리 팀이 3강, 4강 안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팀 성적이 올라가면 개인 성적도 따라 오고 연봉도 오른다. 세근이형을 봐라. 팀 성적이 좋으니 평가도 좋지 않나. 솔직히 부러웠다. 나도 당연히 팀 성적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랴오양(중국)=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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