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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극적 버저비터, 그날밤 문태종과 유도훈 감독은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2-01-11 13:52


전자랜드 문태종이 10일 KT와의 원정경기에서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뒤 팀동료 임창한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KBL

적장인 KT 전창진 감독마저 손가락으로 문태종을 가리키며 허허 웃었다. '설마…' 했던 슛이 그대로 림으로 빨려들어가자 천하의 승부사인 전 감독도 '타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전자랜드의 귀화혼혈선수 문태종이 10일 부산 KT와의 원정경기에서 버저비터의 진수를 선보였다. 경기 종료 20초를 남겨놓고 KT가 조성민의 3점슛으로 74-73 역전에 성공했다. 남은 시간은 겨우 5.7초. 전창진 감독이 포효하듯 기쁨을 드러냈다. 승리를 예감하고 오른쪽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하지만 잠시후 거짓말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하프라인을 넘어선 문태종이 툭툭 드리블을 하며 천천히 전진하더니 3점슛 라인을 두세 걸음 남겨놓은 거리에서 슛을 던졌다. 눈짐작으로 봤을 때 족히 8m 거리는 돼보였다. 깔끔한 역전 버저비터로 이어졌다.

76대74로 전자랜드 승리. 결과론으로 봤을 땐, KT 선수들이 조금 더 빨리 문태종에게 붙어줘야 했다. 거꾸로 보면 문태종의 슛이 그만큼 기습적이었다.

"공이 예쁘게 날아갔다"

전자랜드 이날 승리로 19승17패가 됐다. '타짜' 문태종의 마지막 승부수가 먹히지 않았다면 전자랜드는 지긋지긋한 '승률 5할 분기점'으로 또다시 후퇴할 뻔 했다.

누구보다 기뻤을 이는 바로 유도훈 감독이다. 유 감독은 11일 전화통화에서 "조성민의 3점슛이 들어가기 전에 우리쪽에서 자유투를 자꾸 넣지 못할 때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T는 5명이 움직이는 조직력이 최고니까 여차하면 우리가 몰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렇게 됐는데 문태종의 슛이 들어갔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마지막 5.7초를 남겨놓고 전자랜드는 작전타임 기회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득이 됐다. 유도훈 감독은 "조성민이 3점슛을 쏠 때 일단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전을 허용한 뒤 작전타임도 다 쓴 상태였고, 속으로 그저 빨리 공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만 났다. 그때 태종이가 하프라인 지나서 그냥 점프슛을 쏘는데 공이 예쁘게 날아간다는 느낌이 확 왔다. 문태종이 그 상황에서도 본인 폼으로 탁 던지는 게 느껴졌다"고 순간을 설명했다.


농구의 묘미

유도훈 감독은 "이런 짜릿한 승부는 KT&G 시절에 SK와 플레이오프 1차전때 겪고 난 뒤 오랜만인 것 같다. 경기 끝나고 평소보다 문자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무엇보다 재미있는 농구를 했다. 농구는 몸싸움이 허락되는 스포츠다. 적당한 몸싸움 속에 양팀 선수들이 약간의 신경전도 펼치고, 그러면서 열정 넘치는 경기를 했다. KT도 선수들이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그 와중에도 경기후 악수를 할 때 전창진 감독의 얼굴이 보였을 것이다. 유도훈 감독은 "전 감독님이 허탈한 웃음만 짓는 게 눈에 보였다. 이런 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마지막에 조성민의 3점슛이 가능했던 건 전 감독님의 작전이 잘 먹혀든 것인데, 운은 우리가 좋았다"고 말했다.

종료 5.7초를 남겨놓고 역전 3점슛을 허용한 팀은 확률적으로 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도훈 감독은 "조성민의 3점슛으로 역전당하는 순간에는 솔직히 속으로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웃었다.

버저비터 문태종, 얼굴은 '3연패' 표정

더 재미있는 건 역전 버저비터의 주인공인 문태종이다. 보통의 선수들이 이같은 극적인 경기를 평생 몇차례나 경험할 수 있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문태종도 이날 경기 종료 직후 코트에서 기쁨을 과시했다. 부산 원정경기임에도 양팔을 들고 코트를 가로지르며 세리머니를 했다. 이어 팀동료 임창한과는 껑충 뛰어올라 배치기를 했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문태종이 평소 경기후 하는 배치기 세리머니에 비하면, 10일 경기에선 점프가 상당히 높았다"며 웃었다. 문태종은 포커페이스로 유명하다.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문태종이 평소보다 점프가 높았다는 건 상당히 기뻐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기쁨의 표정은 코트에서 잠시 보인 게 전부였다. 경기가 끝난 뒤 전자랜드 선수단은 숙소로 이동해 씻고 식사를 한 뒤 구단 버스를 타고 홈으로 돌아왔다. 문태종은 곧바로 '3연패한 얼굴'로 바뀌어 조용히 있었다고 한다. 구단 관계자는 "문태종은 본래 경기에 이겨도 코트를 벗어나면 연패 당한 선수마냥 표정이 숙연해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어찌보면 격한 흥분도 쉽게 가라앉히는 이같은 스타일이 문태종의 '타짜' 기질을 설명해주는 단서일 수도 있다. 코트에서 뛰어다닐 때를 제외하면 늘 시무룩한 듯 보이는 문태종이 오랜만에 버저비터의 묘미를 팬들에게 선사했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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