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KBO리그 SSG와 LG의 경기가 열렸다. 6회 SSG 추신수의 내야뜬볼 타구를 LG 문보경이 잡아냈다. 수비 도중 동료들을 향해 웃고 있는 임찬규.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3.05.23/
[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왜 염경엽 감독은 임찬규를 '국내 1선발'이라고 콕 집어 칭찬했을까.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은 23일 SSG 랜더스전 승리 후 두 발 뻗고 잠을 잘 잤을 것이다. 치열한 선두 경쟁 속 펼쳐진 SSG와의 맞대결. 3연전 첫 경기를 9대1 대승으로 장식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염 감독은 4회 김민성의 만루홈런이 터졌을 때, 선수들을 맞이하며 어린 아이같은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다. 염 감독의 그런 웃음을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결정적 홈런을 친 김민성도 수훈 선수였지만, 선발로 등판해 6이닝 1실점 쾌투를 펼친 임찬규도 이날의 영웅이었다. 최근 몇 년동안 떨어졌던 직구 구속이 이제 147km까지 올라왔다. 물론, 어린 시절 던졌던 150km 강속구는 이제 사라졌고 평균 구속은 여전히 140km대 초반이지만 빠른 공 던진다고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 아닌 게 야구다.
여기에 갈고 닦은 변화구는 더 정교해졌다. 특히 이번 시즌 체인지업의 위력이 좋다. 직구 구위가 살고, 체인지업이 잘 떨어지자 타자들이 임찬규를 공략하는 게 쉽지 않다.
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KBO리그 SSG와 LG의 경기가 열렸다. 4회 2사 만루에서 LG 김민성이 만루홈런을 날렸다. 득점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염경엽 감독.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3.05.23/
임찬규의 페이스가 얼마나 좋냐면, 4월 중순 대체 선발로 투입되기 시작한 이후로 6경기 4승 무패다. 최근 3경기 연속 승리 투수. 2차책점을 넘긴 경기가 없었다. 심지어 SSG전 전까지는 단 1개의 홈런도 맞지 않았다. 작년까지는 공이 가벼운 스타일이라 피홈런도 많았던 그였는데, 이날 최주환에게 허용한 솔로포가 '옥에 티'였을 정도다.
염 감독은 경기 후 "임찬규가 국내 1선발답게 다양한 구종으로 좋은 피칭을 해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잘했다가 아니라 왜 '국내 1선발'이라는 말을 썼을까.
'지략가' 염 감독의 여러 의도가 담긴 코멘트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시작에는 기회를 주지 못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씩씩하게 제 역할을 하는 임찬규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다. 임찬규는 FA 자격을 얻었지만 신청할 수 없었다. '재수'를 선택했다. 하지만 염 감독 부임 후 5선발 경쟁 후보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그런 가운데 붙박이 선발 중 한 명이던 이민호의 부상으로 기회가 생겼다. 불펜으로 던지다,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에도 최선을 다하는 임찬규의 모습이 대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임찬규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 했다. 이민호의 부상과 김윤식의 WBC 후유증, 그리고 강효종의 부진 등으로 토종 선발진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임찬규가 4승을 해줬다. 임찬규가 없었다면 초반 LG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KBO리그 SSG와 LG의 경기가 열렸다. 6회 2사 1, 3루에서 SSG 에레디아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포효하는 LG 임찬규.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3.05.23/
또, 다른 선발 자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한 의도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LG는 양현종(KIA) 김광현(SSG) 처럼 확실한 토종 에이스가 없다. 김윤식이 지난 시즌 후반기 엄청난 활약을 펼쳤지만,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이번 시즌 초반 좋지 않다. 이민호도 팔꿈치 부상 후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염 감독은 토종 에이스가 확실하게 3선발 자리를 지켜줘야 팀이 강해진다고 믿는다. 그런 가운데 최근 몇 년간 부진했고, 선발 경쟁에서 밀렸던 선배가 토종 에이스 대접을 받는다면 어린 후배들도 승부욕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선-후배간 선의의 경쟁이 벌어진다면, LG 선발진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