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하늘숲길트레킹

스포츠조선

'아! 할머니' 5연패 팀 버리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선발 맏형, 알리지 못한 부고[SC비하인드]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23-05-04 08:59 | 최종수정 2023-05-04 13:05


'아! 할머니' 5연패 팀 버리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선발 맏형, 알리…
2023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3회말 한화 장민재가 두산 정수빈의 투수 앞 땅볼타구를 잡아 1루에 던진 후 아쉬워하고 있다. 1루심의 아웃판정이 선언됐고 두산의 비디오판독이 요청됐으나 번복되지 않았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3.05.02/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지난 2일 잠실구장.

이날 열린 두산과의 주중 원정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한 한화 이글스 투수 장민재(33)는 경기 내내 웃지 못했다.

5⅔이닝 동안 4안타 1볼넷 2사구로 1실점 하며 눈부신 호투를 펼쳤지만 타선 지원 부재 속에 0대3으로 패하며 시즌 2패째(1승). 빠르지 않은 공으로 4회까지 0의 행진을 벌이며 두산 파이어볼러 라울 알칸타라와 숨 막히는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5회 1사 후 로하스에게 허용한 솔로홈런 한방이 유일한 실점이었다.


'아! 할머니' 5연패 팀 버리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선발 맏형, 알리…
2023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6회말 한화 장민재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3.05.02/
외야수 이원석과 오선진의 호수비에도 엄지를 치켜세우고 박수를 치며 고마움을 표현했을 뿐 웃음기는 없었다.

이유가 있었다. 원정숙소에서 선발 등판을 준비하던 이날 점심 무렵.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어릴 적부터 장민재를 같히 아끼던 외할머니의 부고였다. 두산과의 선발 등판을 6시간 앞둔 시점.

가슴 찢어지는 슬픔 속에서 장민재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 속으로 할머니께 '조금만 늦게 갈게요'라고 용서를 구했다.

구단 관계자에게도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 그 바람에 언론사에도 이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경기 당시 코칭스태프와 동료, 구단 관계자 그 누구도 몰랐던 장민재의 외조모상. 깊은 슬픔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장민재는 잠실 마운드에 섰다.


최근 5연패 속에 한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던 소속팀. 선발진 맏형으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임시선발을 투입할 경우 알칸타라에 맞서 승산은 거의 없었다.
'아! 할머니' 5연패 팀 버리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선발 맏형, 알리…
2023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2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5회말 두산 로하스가 선제 솔로홈런을 날렸다. 홈런을 허용한 한화 장민재가 아쉬워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3.05.02/
장민재도 7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한 알칸타라의 벽을 넘지 못했다.

6연패에 빠진 팀은 더 어둑해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이날 던진 92구에 혼신의 힘을 실었다.

이기지 못한 경기.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장민재는 구단에 비로소 부고를 알리고 부랴부랴 기차 편으로 할머니가 계신 고향 전남 광주로 향했다. 선발 맏형의 책임감에 한화 선수단 모두의 마음이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수베로 감독은 이날 경기에 대해 "장민재 선수가 굉장히 잘 던졌다. 상대 선발 알칸타라가 좋은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팽팽한 승부를 할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장민재에게 단 1점도 지원해주지 못했던 한화 타선과 후배 투수 김민우가 다음날인 3일 두산전에 힘을 냈다.

김민우가 6이닝 1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역투 하는 사이 0-1로 끝려가던 7회 대거 8득점으로 8대3 대승을 거두며 6연패를 끊었다. 남다른 책임감으로 후배들의 투혼을 깨운 선발 맏형의 힘이었다.

장민재는 올시즌 5경기에서 1승2패 2.81의 평균자책점으로 막내 문동주(4경기 1승2패 2.38)와 함께 한화 선발 마운드의 중심으로 활약 중이다. 팀을 위한 베테랑 투수의 속 깊은 마음이 일깨운 '팀 퍼스트' 정신. 한화의 속절 없는 추락을 멈춰 세울 반등의 날개가 될 지도 모르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