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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병→취사병, 최전방에서 온 미스터제로, '갑툭튀' 아니다...그물망에 담긴 꿈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22-04-21 20:23 | 최종수정 2022-04-25 15:30


김시훈은 미스터 제로다. 8경기 째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창원=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창원=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조용하지만 강력한 신인왕 후보. NC 신성 김시훈(23)이다.

'갑툭튀' 처럼 등장해 대포알 직구로 연일 미트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놀라운 신예. 하지만 그는 2018년 입단한 무려 5년 차 선수다.

마산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당당하게 NC 유니폼을 입은 선수. 창원 지역 최초이자 마산고 출신 첫 NC 1차지명된 터. '찬란한 1군 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입대 전까지 단 하루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명되고 지역에서 제일 잘한 선수란 자부심 가지고 입단을 했죠. 저도 당연히 개막 엔트리 들어가고 하는 꿈을 꿨습니다.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신인 때부터 좀 더 잘해보려고 다양하게 폼을 시도하다 정립이 안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것 마저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어요."

길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갔고, 군 입대를 피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현역 복무 대상자였다.

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밑바닥을 찍었으니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역하면 반드시 1군에서 야구를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것 뿐이었어요."


김시훈이 강원도 고성 22사단에서 복무할 당시 피칭훈련을 했던 텐트형 네트. 사진제공=김시훈
김시훈이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은 최전방이었다. 강원도 고성 22사단.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입대 후 1년 정도 야구 공을 잡지 않았다. 기본으로 돌아갔다. 웨이트 트레이닝에만 집중했다. 규칙적인 생활과 맑은 공기. 그 속에 단단한 의지가 단단한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1년 후 비로소 공을 잡았다. 최전방 부대의 빡빡한 군 생활. 쉽지 않은 여건이었다.

하지만 굳은 의지 앞에 장애물은 없었다. 탠트 모양의 네트를 구했다. 그물이 헤질 때까지 던지고 또 던졌다. 전역 5개월 전. 보직도 취사병으로 바꿨다. 제대에 앞서 운동할 시간을 최대한 많이 벌기 위해서였다.

2021년, 드디어 예비역 신분이 됐다.

입대 전 김시훈과 입대 후 1군 캠프를 거친 김시훈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몸이 달라졌고, 멘탈이 달라졌다.

NC 이동욱 감독은 "군 입대 전보다 무려 10㎞ 가까이 구속이 늘었다"며 놀라워 했다.

"일정한 투구 폼으로 반복 훈련하면서 제게 맞는 밸런스를 찾았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좋아진 힘을 제 공에 실어 던질 수 있게 됐죠."


5일 창원NC파크에서 KBO리그 NC와 롯데의 경기가 열렸다. NC 김시훈이 힘차게 투구하고 있다. 창원=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2.04.05/
탄탄해진 몸만큼 마음도 단단해졌다.

더 이상 피해가지 않는다. 150㎞가 넘는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낙차 큰 커브와 슬라이더, 스플리터를 존 가까운 곳에 과감하게 던진다. 한번 맛본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상대타자를 압도하는 무표정 속에 녹아있다.

"군 생활하면서 1군에서 야구하는 제 자신을 항상 이미지 트레이닝 했는데 그 모습이 실현 돼 뿌듯해요. 지금은 다른 생각 안하고 제 공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던져요. 제 자신을 믿으니까 많은 것이 달라지더라고요."

어느덧 김시훈은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처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가 됐다. 최전방에서 그물망에 공을 뿌리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수원 KT전에서는 5회 마운드에 올라 데뷔 후 최다인 3이닝 동안 44구를 던지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벌써 9경기 11⅓이닝 동안 단 1점도 내주지 않은 '미스터 제로'다. 탈삼진은 이닝 당 1개가 훌쩍 넘는 14개.

"제가 던지는 모습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선수로 생각 할 수 있지만요. 제 나름대로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것이 있습니다. 반짝 사라지는 선수가 아닌 오랜 동안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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