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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아니 굳이 왜 닦아요."
모든 은퇴식의 화두. 눈물이다.
펑소 캐릭터를 살려 "최대한 유쾌하게 하고 싶은데 모르겠다. 나이가 먹으니까 툭 찌르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 조차 '눈물의 은퇴식'의 예외는 될 수 없었다.
사연을 보면 그럴 만 하다. 그는 집념의 야구인생을 살았다. 순탄치 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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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고를 졸업하고 그를 찾는 프로구단은 없었다.
중앙대에 진학한 뒤 그는 부단한 노력으로 칼날 같은 제구와 변화구를 가다듬으며 느린 공으로 대학 야구를 평정했다. 정상급 투수로 발돋움 하고, 2009년 신인드래프트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느린 모닥볼러'에 큰 관심을 갖는 팀은 드물었다.
스카우트 잘하기로 유명한 두산 스카우트팀의 매의 눈에 딱 포착됐다.
2차 6라운드 42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하위 순번이었지만 1순위 투수보다 또렷한 족적을 남겼다.
은퇴식에서는 이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 처럼 스쳤다. 닦지 않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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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들의 은퇴식을 찾아 함께 눈물을 흘린 부모님이다.
늘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하면서도 차마 아들의 경기를 직접 보지 못하시는 마음 여린 분들.
"부모님께서 정작 제가 경기할 때는 안오셨어요. 떨려서 못 봤던 것 같아요. 너무 애타게 가슴 졸이며 응원해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두번째는 자신을 키워주고 힘이 돼준 동료와 지도자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를 혼내시면서 정신차리게 하고 아껴주신 김태형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두산 모든 코치님, 트레이닝 파트 코치님들이 계셨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보다 더 자주 보고 같이 땀 흘렸던 두산 선후배 동료들, 같이 야구했던 순간들은 순간들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겠습니다."
마운드 위에선 투사로 변하는 터. 맞혀 잡는 투수의 예민함도 때론 있었다. 모든 순간의 영광을 함께 해준 동료들은 눈물 나도록 고마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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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공에 확신을 가지기 까지 보이지 않는 부단한 땀 흘림이 있었다. 늘 쾌활하고 유쾌한 표정 뒤에는 고통의 찡그림이, 좌절이 밑거름이 됐다.
"저는 유망주도 아니었고 1차 1번도 아니었습니다. 단점이 있었고 편견과 많이 싸웠습니다. 단 한명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온건 아닌 만큼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구속이 안나오는 선수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고요. 느린 공을 던지는 투수들도의 유희관 처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트렌드를 제시했다면 선배로서 뿌듯할 것 같습니다."
"찌르면 바로 터질 것 같다"던 예고대로였다. 닦지 않은 눈물이 13년 간 정들었던 잠실 그라운드를 적셨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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