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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시선]선수협 둘러싼 판공비 논란, 불편한 이유와 안타까운 이유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20-12-02 11:38 | 최종수정 2020-12-03 07:50


프로야구 선수협회장 이대호가 2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판공비 논란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회장으로 취임한 뒤 자신의 판공비를 2배 인상하고, 개인계좌로 받아 사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청담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0. 12. 02/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불편한 이야기들이 들린다.

이대호 프로야구 선수협 회장과 김태현 사무총장의 판공비를 둘러싼 논란이다.

최근 각종 의혹보도에 이어 둘다 사퇴를 밝힌 상태다. 2일 이대호 회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관행을 제대로 시정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판공비 셀프 인상이 아니었다"는 해명도 있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의혹은 빠른 시간 내에,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판공비 명목임에도 현금 지급이 된 이유(회장 판공비는 2400만 원에서 2배 이상 인상된 연간 6000만 원), 보수화된 판공비 지급의 결정 주체, 누구의 주도로 판공비를 올렸는지 등의 팩트가 한점 의혹 없이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선수협이 대내외 적으로 도덕적 기반을 회복할 수 있다. 그 토대하에 최저 연봉을 받고 어렵게 프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들을 대변할 수 있다.

선수협은 프로야구 현역 선수 모두의 권익을 위한 공익 단체다.

때론 구단과, 때론 KBO와 강하게 대치할 수 있다.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구성원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집행부의 도덕적 기준은 하늘 만큼 높아야 한다. 의혹이 제기된 만큼 충분히 납득할 만한 적극적인 해명과 후속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유소년야구 클리닉 행사에 참석한 이대호 선수협 회장(오른쪽).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진위를 떠나 이번 논란이 몰고온 파장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판공비 인상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살짝 불편한 이유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여러 잡음 속에 공석으로 남아있던 선수협 회장을 맡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최고 연봉자로서 대의를 위해 기꺼이 싫은 일을 맡았다. 고심 끝에 어려운 자리에 오른 신임 회장의 보다 적극적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이사진은 판공비 인상을 결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그리고 선수협이 가장 보호해야 할 최저연봉 선수들은 판공비 인상을 자발적으로 사양하는 신임 리더의 통 큰 미덕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이번 논란이 더욱 아쉬운 것은 지난 1년 간 권익 대변을 향한 선수협의 소극적 행보 탓이었다.

선수협은 사상 유례 없는 코로나19 정국 속 여러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권익을 향한 투쟁보다 마케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사안들에 적극적이고 유효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실효성 있는 FA 등급제나 실질적 룰 5 드래프트 도입, 최저 연봉 등을 둘러싼 협상과 대응이 필요했지만 시의적절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프로야구 선수협회장 이대호가 2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판공비 논란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회장으로 취임한 뒤 자신의 판공비를 2배 인상하고, 개인계좌로 받아 사용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청담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0. 12. 02/
협상은 많은 경우 제로섬 게임을 전제로 한다.

양보할 건 양보하고, 취할 건 취해야 한다. 그만큼 협상의 기술이 필요하다. 고액 연봉자와 저 연봉자의 입장이 대립할 수 있는 선수협은 더욱 그렇다. 구성원 간 이해관계 조율과 외부 협상력이 반드시 필요한 자리가 바로 선수협 집행부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선수협 집행부는 이런 첨예한 문제들에 있어 내부 조율 능력도 능동적인 협상력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서는 '고액 연봉자의 입장만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있었다. 향후 선수협 내부의 불신과 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씨앗이다.

실무 책임자인 사무총장이 신입이라 야구계 전반에 걸친 상황과 업무파악의 시간이 필요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문제다. 선수협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은 연습하는 자리가 아닌, 이미 준비된 인사가 맡아야 할 엄중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선수협이 풀어야 할 일은 산더미다. 선수 권익 확대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여야 할 일들이 수두룩 하다. 일사불란하게 단일 대오로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내도 상대하기 벅찬 대기업 구단들 중심의 KBO와 효율적 협상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중대한 기로에서 선수협은 또 한번 불필요한 논란과 불신 속에 분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신임 사무총장은 단 1년 만에 논란을 남긴 채 회장과 함께 자진 사퇴했다. 다음주 새 집행부가 꾸려진다.

하루가 급한 상황에 시간은 논란과 함께 속절 없이 흘러가고 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최저 연봉 선수들의 권익보호를 향한 발걸음이 그만큼 더뎌지게 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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