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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인 이별 방식이었다. 베테랑 선수와 구단의 헤어짐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자존심', '정당한 대우', '진정성', 그리고 '리빌딩'.
손승락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며 정상의 자리일 때 내려오길 원했고, 이제는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은퇴의 변을 내놨다. 한창 FA협상 중이던 선수가 은퇴를 선언한 것은 KBO리그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FA를 선언했으나 오갈 데가 없어 미아가 된 선수는 있어도 원소속팀이 몸값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난 예는 없다.
이같은 흐름이 가능했던 것은 동향에 동갑내기, 같은 시기 야구를 했던 '친구' 성민규 롯데 단장이 있어 가능했다. 손승락은 "구단 입장과 단장의 입장을 이해한다. (성)민규는 한 팀의 단장이다. 나는 떠나지만 그의 인생도 중요하다. 처음 두번의 협상에서 민규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팀의 단장님이다. 그럴 수 없다'며 존대를 이어갔다. 지난 1월 31일 은퇴의사를 밝힌 뒤에야 우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손승락은 "싸우려고 했으면 큰 싸움이 됐겠지만 좋게 좋게 마무리 하고 싶었다. 조건보다는 구단에서 나를 '덜 필요로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부분"이라고 말했다.
손승락이 은퇴 의사를 밝히자 롯데 구단은 손승락을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손승락은 시즌 후 코치연수를 해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몸값은 구단이 원하는대로 받겠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롯데 구단이 코치 연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미련없이 옷을 벗었다.
손승락은 "구단 제시액에 따라 은퇴여부를 결정했다면 구단과 대립각을 세웠겠지만 그렇진 않았다. 지금은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미국으로 연수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손승락은 떠나면서 롯데에서 좀더 활약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도 덧붙였다.
리빌딩과 새로움을 추구해야하는 롯데는 1년을 고집했고, 손승락은 진흙탕 싸움 대신 깔끔하게 야구인생을 마무리했다. 보기드문 '쿨내 진동' 이별이었다. 너무 낯선 풍경이어서인지 주위에선 줄기차게 '다른 이유'를 찾기도 했지만 이것이 알려진 전부다.
손승락은 2016년부터 지난 4년간 롯데에서 마무리로 활약하며 94세이브를 기록했고, 2017년에는 구단의 한 시즌 최다인 37세이브를 따냈다. 2005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손승락은 2010년부터 주전 마무리를 맡은 뒤 KBO리그를 대표하는 클로저를 활약했다. 2015년말에는 FA로 4년 60억원을 받고 롯데로 왔다. 통산 601경기에서 45승49패, 271세이브를 기록했고, 4차례 세이브왕, 통산 세이브 순위는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277개)에 이어 역대 2위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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