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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른 무대였다. 고심 끝에 투입한 감독은 물론이고, 그라운드 위의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관중들까지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제발 잘 던져줘'라고.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더 잘 던지기를 바란건 바로 선수 본인이었을 것이다. 시리즈 내내 컨디션과 구위가 좋지 않아 등판 기회를 얻지 못했던 두산 베어스 유희관은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갖고 마운드에 올랐다. 12일의 깊은 밤 잠실구장,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4-4로 맞선 연장 13회초였다.
유희관은 고개를 숙이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한국시리즈를 열심히 준비했지만, 내내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시리즈 처음으로 나온 자리에서 치명적 한 방을 허용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런 유희관을 감싸줬지만, 선수 본인이 느끼는 좌절감과 상처까지 다 어루만질 순 없었을 것이다.
비록 뼈아픈 결승 홈런을 허용했지만, 유희관은 그간 팀을 위해 뛰어난 활약을 해온 선수다. 특히 2015, 2016시즌에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거둘 때 마지막 순간 마운드에서 두 팔을 올리고 환호했던 이가 바로 유희관이다. 12일 밤의 결승포 헌납보다 그가 지금까지 팀에 안긴 영광의 순간이 훨씬 많다. 올해 정규시즌에도 10승(10패)을 거둬 6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국시리즈는 12일 밤으로 끝났어도 야구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유희관은 내년에 33세가 된다. 여전히 30대 초반이다. 한국시리즈에서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 겨울을 뜨거운 단련의 시기로 보낸다면 다시금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회복할 수도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과연 유희관이 뼈아픈 상처를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