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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는 1분짜리 단편 영화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시구는 그만큼 상징성 있는 이벤트다. 과거에는 정계 인사들이 마운드를 자주 찾았지만, 이제는 트렌드가 바뀌었다. 눈높이가 높아진 야구팬들에 맞춰 훨씬 다양한 시구자가 섭외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유명인 시구보다 감동 시구, 의미있는 시구가 주류가 됐다.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구자
연예인이나 유명인 가운데 시구 요청이 들어올 경우, 대부분 구단들의 최우선 원칙이 해당 구단의 팬이고, 야구를 좋아하는 인물일 때 섭외가 이뤄진다. 예전에는 특정 연예인이 여러 구단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그런 경우는 보기가 힘들다. 특히 특정팀의 오랜 팬이라고 밝혔던 연예인들은 시구자로도 환영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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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일 KT 위즈의 홈 경기에서 해외 파병 군인인 도경원 중사의 가족들이 시구자로 나섰다. 아내 서가영씨가 던진 공을 포수가 받았는데, 일어나 마스크를 벗은 포수는 해외 파병 중인줄 알았던 남편 도경원 중사였다. 감동받은 가족들의 모습에 행복을 기원하는 뜨거운 박수가 관중석에서 쏟아졌다.
최근 KBO리그에는 감동적인 사연을 지닌 이들이 시구자로 나선다. SK 와이번스는 지난해 일본 위안부 피해 할머니 길원옥 여사를 시구자로 선정했고, 삼성은 국내 최초 팔 이식 수술 성공 환자인 손진욱씨가 공을 던져 감동을 줬다. 암 투병 끝에 지난 2011년 사망한 故 최동원의 어머니 김정자 여사는 지난해 6주기를 맞아 롯데 자이언츠 홈 경기에서 아들의 이름과 등번호가 적힌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섰다. 지난해 뇌성마비 보디 빌더 김민규씨를 시구자로 정했던 두산 베어스는 사회봉사단체기관들과 연계하고 있다. 다음달에도 박건우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소아암 환우를 시구자로 초청할 계획이다. 이처럼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마운드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는 장면 자체로 야구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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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시구에 한정하자면, 이동거리와 소요 시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지방에서는 이벤트성 시구를 보기 힘들다. 시구 없이 진행되는 경기가 서울팀들에 비해 훨씬 더 잦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LG, 두산이나 고척돔의 넥센 히어로즈 등은 시구 제안도 무척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지방 연고팀들은 특유의 지역색을 오히려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유명인을 선정할 때도 팀이나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려 노력한다. 아니면 '골수팬'일 경우에 가능하다. 롯데는 열혈팬으로 유명한 배우 조진웅이 지난 2013년 홈 개막전 시구를 맡았고, 부산 출신 배우 임수향, 에이핑크 정은지 등이 과거 인연을 맺었었다. 한화는 충남 보령 출신 개그맨 남희석, 대전 출신 배우 송중기의 시구가 화제를 모았고, KIA는 목포 출신 개그맨 박나래, 화순 출신 배트민턴 선수 이용대 등이 마운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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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난 이후 이상화 윤성빈 심석희 최민정 등 '올림픽 스타'들이 줄줄이 시구자로 나섰다. 특히 이상화는 2010년, 2014년에 이어 3번째로 두산의 홈 시구를 맡았다. 지난 인연 덕분에 두산 구단이 이번 올림픽이 끝난 후 또 한번의 시구를 제안했고, 이상화 측이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두산 이왕돈 마케팅팀장은 "좋은 성과로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선수들이라 시구자로 모시는 것이 영광"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대회 메달리스트 뿐만 아니다. 삼성은 라이온즈파크 개장 첫 시구자로 '피겨 여왕' 김연아를 선정했고, SK는 V리그 첫 우승을 달성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 연고지가 같기 때문에 박기원 감독과 MVP 한선수를 시구자로 내세웠다. "우승 기운을 받자"며 타 종목 우승팀 선수를 시구자로 초청하기도 한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