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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대전구장에서 취임식을 가진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은 많은 이들로부터 덕담을 들었다. 축하 자리에 늘 등장하는 단골 코멘트들이었다. 한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이들에게 웃으며 되물었다.
한화는 지난 10년간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LG 트윈스와 함께 역대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타이. 올해마저 무릎을 꿇으면 불명예스런 역사를 또 하나 남기게 된다. 10년 아픔은 한화를 둘러싼 여러가지 '조롱'을 만들어 냈다. 타팀 팬들은 한화 응원가인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 문구를 따서 '행복 야구', '행복 수비' 등으로 한화를 비꼰다. 패배와 행복은 딱히 접점이 없다. 뭘 해도 한화는 안될 것이라는 일종의 평가절하다.
한용덕 감독은 지난해 일본 미야자키 가을 마무리캠프에서 선수들에게 패배의식을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한 달간의 캠프를 통해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올해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선 12차례 연습경기를 통해 2승5무5패를 기록했다. 일본프로야구 팀들을 상대로 기록한 5무(3패) 역시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한화 프런트 사이에선 '성적을 두고 설레발을 치면 안된다'가 불문율처럼 굳어져 있다.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등 '3김 레전드 사령탑'을 두루 모셔봤고, 스토브 리그 큰손으로 광적인 투자도 했다. 지난해에는 외국인 선수 세명에 확정연봉만 480만달러를 썼다. 내부 육성, 리빌딩도 꾀했다. 안써본 카드가 없었다.
2018시즌 한용덕 야구는 이글스 10년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한용덕 감독은 선수 위주의 야구, 순리대로 풀어가는 야구, 믿음을 토대로한 야구를 표방하고 있다. 리빌딩 첫해 프런트는 가을야구 언급을 급격히 꺼리고 있지만 한 감독은 가을야구를 목표로 하지 않는 야구팀은 존재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
올시즌을 앞두고 한화 구단은 이례적인 행사를 했다. 한용덕 감독과 장종훈 수석코치, 송진우 투수코치 등 새롭게 팀에 합류한 레전드 코칭스태프에게 선수 시절 배번을 부여한 것이다. 영구결번된 장종훈 수석과 송진우 투수코치의 배번도 새롭게 부활했다. 강했던 그 시절로의 복귀 염원과 팬들의 향수도 자극했다.
한 감독은 자칫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음을 경계했다.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선수들에게 비춰달라는 주문이다. 선수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발전하고, 경쟁해야 팀에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프로야구 감독은 경기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자리다. 선발, 선수기용, 오더(라인업), 선수교체, 작전까지. 경기 전반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자다. '선수를 믿는 감독'과 '선수들이 믿는 감독'. 한 감독이 가고자하는 길은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할 지도 모른다.
표적선발은 없다
한화 구단 관계자는 "우리 감독님 성향을 고려했을 때 향후 표적선발 같은 선발로테이션 변칙 운용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에 따라 선발 로테이션을 조정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우천 취소나 월요일 휴식일 등 이용하면 일정 부분 선발 로테이션 조정이 가능하다. 한 감독은 한번 고정된 로테이션은 웬만하면 끌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는 선수들 스스로 준비하고 이겨낼 수 있는 내부의 힘을 키우는 방편이다.
포지션이나 투수 보직도 마찬가지. LG에서 2차 드래프트로 입단한 백창수는 1루 수비훈련을 받고 있다. 방망이 자질이 좋지만 외야 수비는 불안하다. 1루 수비도 능한 것은 아니지만 포화상태인 외야보다는 김태균의 1루 백업이 필요한 팀내 현실을 반영했다.
백창수는 13일, 14일 시범경기에서 이틀 연속 1루 수비 실책을 했다. 한 감독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다. 잘하고 있다. 감안하고 결정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선수들이 벤치 눈치를 보지 않고 플레이 해야 한다"고 했다. 한번 결정하고 믿음을 부여하면 일정부분 밀어주겠다는 의미다.
급격한 포지션 변경이나 보직 변경도 없을 전망이다. 변동 사항은 선수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서로간에 합의점이 만들어졌을 경우에만 실행하겠다고 했다. 일단 경직됐던 한화의 덕아웃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제 이상이 현실과 맞닥뜨릴 차례다. '한용덕 로드'는 승리를 통해 더욱 평탄해질 수 있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