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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학기, 새 시즌. 새 출발은 언제나 희망차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둘의 만남이라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10분 만에 깨졌다. 붙임성 좋은 강백호와 유쾌한 허 훈은 곧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며 어색함을 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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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훈(이하 허) : KBL이 10월 말에 드래프트를 했으니, 지명은 백호가 먼저죠. 사실 kt 소닉붐의 성적이 좋지 않아 부담이 됐지만 오히려 기회를 많이 받을 수 있어 좋았어요. 무엇보다 생애 한번 있는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자체가 영광이었죠.
강백호(이하 강) :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도 했었고, 청소년대표팀 때문에 캐나다에 있어서 감흥이 덜하기는 했어요. 근데 저보다도 100번까지 지명을 하잖아요? 제 친구들이 빨리 뽑히길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까지 정말 조마조마하며 기다렸어요.
-서로 종목이 다른데 농구와 야구에 대해 잘 알고 있나.
허 : 사실 야구를 잘 몰라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스포츠를 잘 안보는 편이에요.(웃음) 야구장에 가본 적도 딱 한번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인데, 잠실야구장에 가서 보니 관중 문화 자체가 좋은 것 같더라고요. 친구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치킨도 먹고, 좋아보였어요.
강 : 학교에서 농구를 해본 적은 있는데, 옆에 형님이 계신데 제가 잘 한다는 말은 못하고요.(웃음) 이름 때문에 농구 잘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농구를 전혀 모르다가 지난달에 kt 농구단 경기를 처음으로 봤는데, 가까이서 선수들을 보니까 훈이 형이 정말 압도적으로 튀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외국인 선수보다 잘하고 튀어보였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
허 : 아니야.(웃음) 나는 네가 더 부러운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왔으니 시간을 많이 벌 수 있으니.
강 : 대학 생활은 어때요?
허 : 처음에는 다들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지.(웃음) 그런데 막상 가니까 운동만 하느라 학과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고, 쉽지가 않더라. 또 나는 개인적으로 빨리 프로에 오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 일찍 깨지고 부딪히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서로 농구와 야구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다면.
강 : 제가 보기에는 농구가 정말 힘들어 보였어요. 뛰는 양도 훨씬 많고 몸으로 계속 부딪히잖아요.
허 : 제일 힘들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게.(웃음) 농구가 좁은 코트 안에서 워낙 공수 전환이 빠르다보니 힘들어요. 물론 야구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강 : 형. 농구는 무조건 합숙 생활을 한다면서요?
허 : 응. 밤 11시에 무조건 소등이야. 시즌 중에는 집에 가기도 힘들고 자유 시간이 많지 않아. 근데 야구는 일주일에 6경기나 한다면서? 상상도 안된다.
강 : 비시즌에는 주로 뭐하세요?
허 : 1년에 두달 쉬는데, 한달 쉬고 나머지 한달은 몸 관리해야해. 사실 농구는 훈련이 더 힘들어.(웃음) 대학은 1년 내내 경기를 해야하니까 프로보다 더 힘든 것 같아.
-서로에 대해 알고 있거나 들은 이야기가 있나.
강 : 넥센 히어로즈의 이정후 형이랑 무척 친한데, 공교롭게도 유명한 아버지를 둔 선수를 또 알게 됐네요.(웃음) 정후 형을 어릴때부터 봤는데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잘 해야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근데 신기한 것은 정후 형, 훈이 형 다 성격이 다 좋아요.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허 : 어릴 때부터 성격이 무던한 편이었어. 사실 나름대로 부담이야 있지만 안 되면 안 되는거고, 잘 되면 잘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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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프로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밟았던 순간에 어땠나.
허 : 다들 물어보시는데 생갭다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실감이 잘 안났다고 해야하나. 그냥 형들만 보면서 따라했던 것 같아요.
-다음 시즌 첫 타석이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강 : 저는 새로운 환경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설레고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어요. 원래 긴장을 잘 안하는 편이기도 해요. 물론 이렇게 말만 해놓고 정신 못차리다 지나갈 수도 있어요.(웃음)
-프로에서 먼저 뛰어보니 강백호에게 조언해줄 이야기가 있나.
허 : 모든 프로 스포츠는 냉정한 것 같아요. 못했을 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기죽지 않고 자신있게 해야하는 게 스포츠이기도 하고요. 대학 때는 실패해도 또 기회가 있었는데, 프로는 내가 못하면 언제든 대체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달라요. 절실함을 갖고 뛰어야 해요.
강 : 사실 저도 아직 고등학생인데 다른 선수들에 비해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기사도 많이 나왔고, 그만큼 욕도 먹고 칭찬도 받았어요. 기죽지는 않았어요. 관심이 있으니까 기사를 읽어보시고 욕하는 거잖아요.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스스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프로에서의 첫 시즌 목표를 어디까지 세우고 있나.
허 : 사실 저희 팀이 꼴찌인 게 정말 속상해요. 팀이 더 잘했으면 더 신나게 농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크죠. 그래도 올 시즌 다치지 않고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고, 팀도 반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강 : 저는 아직 캠프도 안 갔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는 것은 오해를 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훈이 형은 지금 뛰고 있고, 또 잘하고 있으니까.(웃음) 그래도 목표 하나는 있어요. 첫 시즌에 정말 잘해서 농구 비시즌일 때 훈이 형을 수원 구장에 초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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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형은 왜 농구를 하셨어요? 원래 꿈이 농구 선수였어요?
허 : 원래 초등학교 때 꿈은 의사였어. 물론 공부를 계속 했어도 안됐을거야.(웃음) 공부는 형(허 웅)이 더 잘했어. 반에서 1등도 하고 영어도 잘하고.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미국 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생활하려고 준비를 했었거든. 거기서 형이 농구의 재미에 빠졌지. 아버지는 농구 선수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반대하셨는데, 형의 고집이 워낙 세서 꺾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가족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됐고 형이 농구를 시작했지. 나는 그때 4학년이었는데 허 재 감독의 아들들이 왔다고 하니까 삼광초등학교 코치, 감독님들이 스카우트 제의를 정말 열심히 하셨어. 나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맛있는거 사주시고 하니까 농구부에 들어갔지.(웃음)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농구를 하고 있더라. 너는 투수와 타자를 다 잘한다며?
강 : 사실 저는 왼손잡이인데요. 공만 오른손으로 던져요. 왜냐면 투수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구속이 빨라질거라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투타를 다 하려다보니, 왼손으로 공을 던지면 야수 포지션이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랑 상의를 해서 좌타석에 서면서 오른손으로 던지기 시작했어요. 아쉽죠.(웃음) 아버지도 농담으로 "왼손투수 시켰으면 더 잘했을텐데"라며 아쉬워하세요. 원래 왼손 잡이니 구속은 지금보다 더 빨랐을테니까요. 형은 처음부터 가드였어요? 근데 저는 가드가 농구에서 제일 멋있더라고요. 패스할지 슛을 할지 선택권도 있고, 가장 화려해보였어요.
허 : 어릴 때부터 키가 농구 선수치고 작은 편이기도 했고, 주로 포인트 가드로만 뛰었던 것 같아.
강 : 외국인 선수들이랑 부딪히면 벽에 부딪히는 느낌인가요?
허 : 농구는 개인 피지컬이 정말 큰 것 같아. 나도 프로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외국인 선수를 상대하는 거야. 그래도 나는 포지션이 가드이다보니 많이 부딪히지는 않지만, 가끔 리카르도 라틀리프(서울 삼성)같은 선수와 부딪히면 바위와 붙는 것 같기도 해.(웃음) 무서워 솔직히.(웃음)
강 : 저도 세계 대회에 나가서 외국 선수들 보고 깜짝 놀랐어요. 미국 대표팀은 평균 신장이 거의 2m 더라고요. 어떤 선수는 허리가 제 목에 있었어요.(웃음) 한 투수가 나왔는데 정말 작아보이더라고요. 저희들끼리 "저 선수는 정말 작다"하고 속닥거렸는데 알고보니 1m90이었어요. 다들 워낙 크니 그 선수가 작아보였던거죠.
허 : 근데 너도 체격이 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원래 타고난 체형이지?
강 : 중학교 때까지는 왜소했는데, 중3 때 1년을 쉬면서 살 찌우고 몸을 만들었어요. 그때 20kg 찌워 고등학교에 진학했죠. 지금도 지방과 근육으로 계속 찌우고는 있는데, 이제 너무 가속도가 붙은 것 같아요.(웃음) 요즘은 식이 조절도 하고 많이 찌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어요.
허 : 농구 선수들은 워낙 뛰는 양이 많아서 많이 먹어도 안쪄. 근데 경기 끝나고 나서는 너무 힘드니까 오히려 음식이 잘 안들어가기도 하고.(웃음) 또 경기를 지고난 후에는 팀 분위기도 안좋으니까 음식이 더 잘 안들어가는 기분을 받기도 해. 나도 프로 와서 오히려 3kg 정도 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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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꼭 야구장에 형을 초대하고 싶다"고 다짐한 강백호는 "형도 앞으로 지금보다 더욱 멋있는 농구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다치지 않고 부상 조심하시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수원=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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