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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문화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뭔가 감추려는 습관이라고 봐야 할까.
팬들이 알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계약금과 연봉 수준 정도다. 계약금을 어떻게 언제 주는지, 옵션이 존재한다면 각각 어떤 규모로, 어떤 조건으로 정해졌는 지 알 수가 없다. 계약금과 연봉 규모도 굳이 밝히기를 꺼리는데 옵션 규모와 조건까지 알려 한다는 건 사치다. 지난해 이맘때 KIA 타이거즈는 FA 최형우와 4년-100억원에 계약했지만, 계약금 40억원에 연봉 15억원만 공개됐다. 옵션이 추가로 담겼는지, 담겼다면 얼마이고 조건은 무엇인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내부자'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거품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발표 내용의 투명함과 대중과의 공유가 아쉽다는 이야기다. KBO리그는 출범 36년, FA 제도 도입 18년의 역사를 쌓았음에도 계약 내용 발표 측면에서 여전히 후진적인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력의 양적, 질적 발전에 힘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프로야구 존재의 가치를 담고 있는 계약 공개에 대해서는 폐쇄적이다. 프로야구단 사장을 지낸 한 인사는 "실제 계약 내용을 모두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선수가 부담을 느낄 수 있고, 계약 규모가 그대로 노출될 경우 더 커지는 여론의 반감을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인사는 또 "과거 외국인 선수 몸값을 30만달러로 제한한 것도 실제로는 훨씬 많은 돈을 지불하지만, 규정상으로라도 상한선이 있어야 억지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FA 계약 내용 발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는 그렇지 않다. 계약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명문상 규정은 없으나 구단들과 선수노조, 메이저리그사무국 모두 선수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 지 소상히 알린다. 팬들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는 자세다. 사이닝보너스로 불리는 계약금과 연도별 연봉은 물론 인센티브 조항의 구체적인 조건까지 공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구단의 형편에 따라 계약 기간 이후, 즉 추후 지급 조항에 관해서도 내용을 밝힌다.
2015년 1월 체결된 워싱턴 내셔널스와 맥스 슈어저의 FA 계약 내용을 살펴보자. 계약기간 7년에 총액은 2억1000만달러다. 연도별 연봉은 2015년 1000만달러, 2016~2018년 각 1500만달러, 2019~2021년 각 3500만달러, 그리고 사이닝보너스 5000만달러(연간 714만2857달러 분할지급)라고 공개했다. 덧붙여 해마다 사이영상, 정규시즌 MVP, 월드시리즈 MVP에 각 25만달러, 리그챔피언십시리즈 MVP에 15만달러, 올스타 출전과 골드글러브 및 실버슬러거에 각 10만달러의 보너스를 걸었다. 뿐만 아니라 워싱턴 구단의 장기적 재정 안정을 위해 총액 가운데 1억500만달러는 계약 기간이 끝난 뒤 2028년까지 나눠 받는다는 추후 지급 조항도 넣었다. 슈어저는 당시 우리 돈으로 약 2300억원을 벌어들이는 계약을 한 것인데, 그가 연도별로 얼마를 받고 그에 따라 해마다 세금을 얼마를 내는지를 일반 팬들도 대략 알 수 있도록 계약 내용을 구체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업운동 선수와 연예인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매년 5월 종합소득세를 납부토록 돼있다. 실제 구단으로부터 받은 금액을 국세청에 신고해 일반 경비 등 공제 방식에 따라 실소득액을 산출하고 해당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낸다. 이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들이 실제 얼마에 계약했는가를 알 수는 있다.
프로야구는 팬들의 지지와 응원을 먹고 산다. 선수들이 일반인이 누리기 힘든 경제적 대우를 받는 건 특별한 재능을 통해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용인된다. 구단은 그러한 선수들을 내세워 입장수입, 중계권료, 스폰서 등의 형식으로 수익을 얻는다. 선수들이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는 지를 정확히 공개하는 것은 그래서 가치있고 예의있는 일이다. 일부가 누락된 발표 내용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언제까지 믿어야 할까. 이제라도 계약금, 연봉, 옵션 조건 등 내용을 있는 그대로 소상히 밝힌다면 그나마 '정직한 구단'은 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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