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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5월 21일 수원 넥센 히어로조-kt 위즈전. 5회초 1사 1,2루에서 김진욱 kt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왔다. 12-3으로 크게 앞선 상황에서 감독의 마운드행은 드문 일이다. 직전 1사 1,3루에서 넥센 채태인이 친 땅볼을 2루수 박경수가 잡아 2루로 던졌다. 그런데 유격수 정 현이 이 공을 잡았다가 놓치는 실책을 했다. 5회초에 나온 두 번째 에러. 실책이 빌미가 돼 2실점하자 선수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김진욱 감독은 내야진을 불러모았다. 오랜만에 1군 경기에 등판한 선발 김사율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김진욱 감독이 내려간 후 kt는 두 타자를 연속해서 범타로 처리하고 이닝을 마쳤다. 이후 실책없이 13대4 대승을 거뒀다. 김사율은 2014년 이후 1373일 만에 승리투수가 됐다.
장면2=4월 22일 잠실 KIA 타이거즈-LG 트윈스전 9회말. LG가 2사후 연속 안타로 1점을 뽑아 3-5로 따라붙자 김기태 KIA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내야진을 소집했다. 김기태 감독은 뒷주머니에 있던 물병을 꺼내 투수 심동섭에게 한모금 마시라고 권했고, 이어 작전지시를 했다. 심동섭이 긴장을 풀 수 있도록 물을 주는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심동섭은 오지환에게 안타를 맞아 2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KIA 벤치는 임창용을 올렸다. 임창용은 이형종에게 안타를 맞고 1점을 내줬지만, 후속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끝냈다. KIA의 5대4 승리.
감독이 마운드에 직접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주로 큰 위기 상황이다. 웬만해선 감독이 마운드에 오르지 않기에, 선수들은 그만큼 더 집중해서 플레이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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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마운드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사령탑은 장정석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다. 장 감독은 투수교체 때마다 나서고 있다. "원래 선수 교체를 감독이 하는 것이니까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젊은데 내가 해도 된다"며 웃었다. 장정석 감독은 1973년생으로 10개 구단 감독 중 가장 젊다.
장 감독이 마운드에 직접 오르는 것은 투수와의 교감을 위한 것도 있다. 그는 "선수들과 말할 시간이 없는데 투수교체 때라도 가서 간단하게 말을 한다"면서 "이닝수를 지정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다"고 했다. "불펜투수로 많이 던진 투수도 위기 때 오르면 긴장을 하더라. 긴장을 풀라고 농담을 한다"고 했다. 경기 상황, 투수 성격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장 감독은 "사실 그때그때 말을 하는 거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을 못한다. 심각한 상황에서 진지한 선수가 올라오면 농담을 건네기 어렵다. 파이팅하라고 간단히 말하고 내려오기도 한다"며 웃었다.
물론, 다른팀 감독도 종종 외출을 한다. 이런 경우 대개 선수 예우 차원에서다. 에이스급 투수가 좋은 피칭을 했지만 이닝 중 교체를 해야할 때 감독이 나설 때가 있다. 위기 상황이 와 어쩔 수 없이 교체를 해야할 때, 감독이 위로의 말과 함께 교체를 하는 것이다. 베테랑급 투수에 대한 예우를 하기도 한다. 김기태 KIA 감독은 지난해 최고령 투수 최영필이 선발로 나왔을 때, 4회 교체를 하면서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팀 사정상 선발투수로 나섰던 노장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리드 상황에서의 교체에 대해 미안함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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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투수교체를 하지 않더라도 중요할 때 투수나 야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위해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경기 후반 1,2점차 박빙승부 때 감독이 올라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럴 때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긴장을 풀어주는 얘기를 한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은 2년 전 잠실 LG전 9회 위기 때 권 혁의 뺨을 톡톡 두드려 화제가 됐다. 당시 김 감독은 "흥분하지말고 천천히 던져라. 2점 줘도 괜찮다"고 말했다고 한다. 권 혁은 이 경기에서 무실점으로 팀 승리를 지켰다.
초보감독인 장 감독은 딱 한번 야수들을 마운드로 불러모았다. 4월 13일 kt 위즈와의 홈경기, 6-5로 쫓긴 9회초 2사 1,2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그가 선수들에게 한 말이 재미있다. 장 감독은 선수들에게 "감독이 된 후 제일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고 농담을 건넨 후 "2∼3분만 더 집중하자"고 했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연속안타를 맞고 6대7로 역전패했다. 장 감독은 "그날 이후로는 포수만 불러 얘기한다"며 웃었다.
감독의 행동 하나가 선수들에게 미치는 상징성은 크다. 그래서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 작전지시를 하거나 투수 교체를 하면 선수들은 물론 팬들도 그 장면에 더욱 집중을 하게 된다. 마운드 위의 감독도 팬들에겐 야구를 즐기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