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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무더운 어느 날 오후였다.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 인조잔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지친 기자는 1루측 덕아웃 뒤편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선수들에게 한마디씩 던지며 시간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안경 쓴 선수 하나가 오더니 얼음물 한 병을 건네줬다. "건강 챙기세요"라며 한 마디 던지고는 씩 웃더니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당시 5~6위를 오르내리던 KIA 타이거즈는 페넌트레이스 중반 순위 싸움에 지쳤는지 프런트, 선수단 모두 예민하던 시기였다. 굉장히 고마웠고, 인상깊었다.
양현종은 지난 9일 광주에서 열린 kt 위즈전에서 6이닝 5안타 3실점 호투를 펼치고 시즌 7승째를 따냈다. 올 해 등판한 7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챙긴 것이다. 지난해 10월 3일 kt전부터 따지면 8경기 연속 선발승이다. 지금과 같은 기세라면 본인의 한시즌 최다 기록인 2010년과 2014년의 16승을 넘어 20승도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의 최다 연승 기록인 10연승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양현종은 2009년 정규시즌서 12승을 올리며 비로소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 16승을 거두고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내며 특급 에이스로 거듭났다. 그러나 당시 그는 1인자가 아니었다. 위아래 한살 차이까지 포함해 또래의 출중한 투수들의 그늘에 가려 에이스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 2년 선배인 윤석민(KIA)과 1년 선배인 류현진(LA 다저스), 입단 동기 김광현(SK 와이번스) 다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됐던 시절이다. 매년 기복을 보인 탓도 있었고, 무더운 여름이면 페이스가 처지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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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양현종은 7월 이후 여름이 되면 페이스가 처지곤 했다. 전반기와 후반기 성적이 극과 극이던 시즌이 많았다. 올해도 그같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KIA 코칭스태프도 그에 대비하고 있다. 등판 간격을 조절해주기로 했다. 이 코치는 "로테이션을 지금은 꾸준히 지켜주고 있는데, 쫓기고 그런 것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관리를 해줄 것이다. 겨울에 아무리 준비를 잘 했어도 시즌 중반이 되면 지치기 마련이다"고 했다. 입단 11년차 에이스에게 따로 요구하는 건 없다고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기는 했지만, 지난 겨울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 입단 직전까지 갔던 양현종이 고향팀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지난해 말 KIA와 1년 계약을 하고 난 뒤 양현종은 "내 자신을 KIA 타이거즈와 나누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해외 도전이 아니라면 당연히 KIA에 남을 거라 마음 먹었다. 착실하게 몸을 만들어 올해보다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었다.
착실한 청년, 양현종. 그는 오는 14일 일요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시즌 8연승에 도전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