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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종범 '부담 떨친 정후가 멘탈이 좋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04-13 22:33


이종범 위원이 아들 이정후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2009년 광주 서석초 5학년이었던 이정후가 당시 KIA 타이거즈서 활약중인 아버지 이종범이 통산 500도루, 1000득점, 2500루타 달성한 뒤 열린 시상식에서 꽃다발을 건네는 장면. 스포츠조선 DB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공수주'를 가장 완벽하게 갖춘 선수로 꼽히는 아버지를 둔 1998년 생 고졸 루키 이정후. 야구 잘 하면 잘 하는대로, 못 하면 못 하는대로 관심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운명'이다. 아들이 야구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는 늘 이게 걱정이었다. 휘문고 3학년 때인 지난해 6월, 넥센 히어로즈가 이정후를 2017년 신인 1차 지명을 하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24년의 간격을 두고 부자(父子)가 프로 1차 지명을 받았는데, KBO리그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1차 지명 직후만 해도, 잠재력 이상으로 아버지 덕을 본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1군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거쳐 정규시즌 1군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더니, 시즌 초반부터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개막전부터 13일 kt 위즈전까지 11경기, 전 게임에 출전해 주축 선수로 뛰었다. 이 기간에 세 차례 '3안타 경기'를 했고, 지난 8일 두산 베어스전에선 두 번이나 잠실구장 외야 펜스 너머로 타구를 날렸다. 홈런 2개 모두 변화구를 때렸다. 조성환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고졸 새내기에 좌타자인 이정후가 좌투수 유희관이 던진 커브를 받아쳐, 가장 넓은 잠실구장에서 홈런으로 연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고졸 루키가 첫 해부터 두각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의구심이 사라지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7 프로야구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2회초 넥센 이정후의 2점 홈런 때 무관심 반응을 보였던 선수들이 잠시 후 기뻐해주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4.08.
아버지인 이종범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다른 건 몰라도 멘탈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야구에서 '이종범' 이름 석자에 담긴 '포스'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일거수일투족 집중된 관심이 부담스러울텐데, 이정후는 씩씩하게 이겨내고 성장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지난해 말 이 위원은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서 "아이가 운동하고 싶어다고 했을 때 솔직히 야구말고 다른 종목을 하길 바랐다. 야구선수가 되면 나와 끊임없이 비교될텐데, 엄청난 스트레스가 걱정됐다"고 했다.

이 위원은 현 시점에서 주목받는 게 기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지나친 관심이 야구에 집중해야할 루키선수에게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위원은 "정후가 얼마전 '아빠, 인터뷰 그만 하면 안돼요'라고 하더라. 이제 갓 입단한 새내기인데 자꾸 언론에 나오니까, 선배들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고 했다.

이 위원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 소속이던 1998년 8월 정후가 태어났다. 일본 진출 첫해 맹활약을 하다가, 한신 타이거즈의 사이드암 가와지리 데쓰로가 던진 공에 오른쪽 팔꿈치를 맞아 재활중이던 시기다. 아버지는 아들이 세상에 나온 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직접 가르친 기억은 거의 없다. 프로선수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야구장 가면 감독, 코치가 야구 얘기만 할텐데, 밥상에서까지 야구 얘기하면 부담이 너무 클 것 같아서다. '특별한 유전자'를 물려받는 이정후는 아버지를 직간접적으로 보면서 많은 걸 배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견하다. 이 위원은 "야구 시작해 한 번도 힘들다는 애기를 안 했다. 야구를 참 재미있어 한다. 중학교 땐 재능이 있다는 걸 못 느꼈는데, 휘문고 진학 후 열심히 하니까 두각을 나타내더라"고 했다.


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7 프로야구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2회초 넥센 이정후가 우월 2점을 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7.04.08.

두산 베어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1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8회말 1사 1, 3루 넥센 고종욱의 내야땅볼 때 3루주자 이정후가 홈인하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7.03.19/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고 해도 아버지 마음엔 걱정이 가득하다. 프로선수라면 다 안다. 잘 될 때가 있으면 내려 앉을 때가 있다는 걸. 또 기대에 미치지 못해 했을 때 차가운 시선을. 그렇다고 언젠가 닥칠 일은 미리 얘기해줄 필요는 없다.

이 위원은 요즘 자신의 신인 때 경험을 얘기해주면서 조언을 해준다. 그는 "'야구가 좀 된다고 나서지 마라. 너 혼자 잘해서 잘 풀리는 건 없다. 여러사람이 도와준 덕이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특히 실력보다 인성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야구는 몸으로 반응하는 거라 열심히 하면 되지만. 인성은 주위에서 말을 해줘야 한다. 프로선수가 본분을 망각하고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는데, 먼저 인성을 갖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후는 아직 승용차가 없다. 운동장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거나, 어머니가 승용차로 데려다 준다고 했다. 이 위원은 해태 입단 계약금을 받아 아버지 승용차 사드리고, 본인은 버스타고 다녔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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