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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A조 1위' 이스라엘은 어떻게 편견을 뒤집었나

나유리 기자

기사입력 2017-03-09 18:10


9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 1라운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의 경기가 열렸다. 이스라엘이 네덜란드에 4대2로 승리하며 A조 1위를 차지했다.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이스라엘 선수들.
고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7.03.09

세계랭킹 41위. 최약체로 평가 받았던 이스라엘 대표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최대 이변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편견을 어떻게 뒤집었을까.

이스라엘은 한국, 네덜란드, 대만과 함께 1라운드 A조에 편성됐다. 대회 개막 전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대만은 친숙한 팀이고, 네덜란드는 지난 2013년 WBC 4강 진출을 계기로 인지도가 생겼다. 한국 대표팀도 잘 아는 상대들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변수'였다. 그간 경기에서 직접 만나보지 못했던 선수들이 대다수이기에 대처법을 찾기 어려웠다.

이스라엘이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개막전에서 한국과 연장 10회 접전 끝에 2대1 승리를 거둔 후 흐름을 제대로 탔다. 대만, 네덜란드까지 꺾은 이스라엘이 A조 1위로 2라운드 진출했다.

메이저리거를 꺾은 마이너리거의 힘

이스라엘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 산하 마이너리그 소속이다. 뉴욕 메츠에서 뛰는 내야수 타이 켈리만 빅리그 40인 로스터에 들고, 아이크 데이비스, 잭 보렌스타인, 잭 쏘튼 등 마이너리거가 다수다. 그 외에는 베테랑들이 주를 이룬다. 메이저 124승의 '백전노장' 제이슨 마르키스는 옛 영광을 뒤로 하고 현재 소속팀이 없다. 유일한 이스라엘 출생자 슬로모 리페츠는 자국 리그 소속이다. 외야수 블레이크 게일렌은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다.

'외인구단'처럼 보이는 이들이지만, 메이저리거가 다수 포진된 네덜란드까지 꺾었다. 매 시즌 신분이 불안정한 마이너리거라는 사실이 WBC에서 호재로 작용했다. 스프링캠프가 곧 전쟁터인 만큼 몸을 빨리 만드는데 익숙하고, 국제대회는 각국 스카우트들이 지켜보는 '쇼케이스'다.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데이비스는 공식 인터뷰에서 "이렇게 큰 무대에서 경기를 한다는 자체로 좋은 일이다. 앞으로 커리어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스카우트의 시선을)의식하지 않고 뛰다 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투수진, 생갭다 훨씬 강한데?"


전력분석팀은 이스라엘 선수들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할 때 가장 애를 먹었다. 다른 국가 선수들에 비해 자료가 부족했다. 하지만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김인식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꾸준히 "이스라엘이 생갭다 막강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이스라엘은 서울라운드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한국에 입국한 후 경찰, 상무와 연습경기를 치렀다. 직접 본 이스라엘은 투수진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불혹의 마르키스는 완벽한 제구와 노련미로 스트라이크존을 가지고 놀았고, 대다수가 빠른공을 던졌다. 최고 구속이 150㎞에 육박하는 투수도 다수였다.

대표팀은 "투수만 놓고 보면 네덜란드보다 이스라엘이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연습경기 때 자세히 지켜본 유승안 경찰 감독도 "네덜란드는 릭 밴덴헐크를 제외하면 투수들이 막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투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강하다. 타선의 짜임새도 있다. 생갭다 강팀"이라고 했다.

1라운드 3경기에서 이스라엘 투수진이 흔들렸던 경기는 9회에 연거푸 실점했던 대만전 뿐이다. 한국을 상대로 10이닝 1실점, 네덜란드의 강타선을 맞아 9이닝 동안 2점만 허용했다.


9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 1라운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의 경기가 열렸다. 이스라엘이 네덜란드에 4대2로 승리하며 A조 1위를 차지했다.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이스라엘 선수들.
고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7.03.09
유대인이라는 연결 고리

이스라엘 선수 중 리페츠를 제외한 27명이 미국 출생이다. 이스라엘은 부모, 조부모의 국적으로도 대표팀 출전이 가능한 WBC 규정에 가장 큰 혜택을 본 팀이다. 유대인이라는 연결 고리가 가지고 있는 연대감은 생갭다 특별했다. 지난해 주축 선수들 10명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현지를 방문하면서 소속감이 더 커졌다.

이스라엘 방문 멤버였던 데이비스는 "부모님 모두 유대인이다. 우리 가족은 유대인이라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게 이스라엘 대표로 큰 대회에 나와서 관심을 받는 게 유대계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우리의 활약으로 이스라엘에서 야구 인기가 커질 수도 있다. 시작은 작아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주전 포수 라이언 라반웨이도 "이스라엘 대표팀에 발탁된 후 수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가 높은 수준의 경기를 하는 것은 전세계 유대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리 와인스타인 감독은 "이스라엘 총리가 대표팀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지금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도 우리를 보고 있다"며 의미를 담았다.

이스라엘, 앞으로는 최대 경계 대상

이번 WBC를 기점으로 이스라엘은 이제 국제대회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급부상 했다. 미국 대표팀의 마이너 버전으로 평가 받았지만, 경기력과 조직력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도 '다크호스'가 될 수 있다.


고척=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7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이스라엘과 대만의 경기에서 이스라엘 마무리 크레머가 15대7 대승을 확정짓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고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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