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참사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메이저리거들의 대거 불참, 주력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잦은 엔트리 교체, 또 선수들의 사생활 구설까지 겹쳤다. '역대 최약체 국가대표'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며 기대감은 점점 떨어졌다.
여기에 최악의 문제, 방심까지 겹쳤다. 어떻게 해도 서울라운드는 통과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대표팀을 지배했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의 강도는 높지 않았다. 국가대표 선수들인만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게 당연했다. 각 팀 최고의 선수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언제까지 훈련하라 마라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수들의 컨디션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대표팀 주변에선 "태극마크가 선수들에게 주는 느낌이, 예전과는 다른 것 같다.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이나 의욕 등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냉정한 지적이 나왔다. 병역 면제 혜택 등 당장 눈에 보이는 당근이 없는데, 시즌 개막을 앞두고 죽을 힘을 다 해 뛸 이유가 있겠느냐는 얘기도 있었다.
코칭스태프의 용병술도 문제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확실히 잡을 경기라는 판단해 수준급 불펜 조시 자이드가 49개의 공을 던지게 했다. 반면, 한국은 네덜란드전을 대비해 오승환을 아꼈고, 결국 연장에서 점수를 내줬다. 대표팀은 그동안 투구수 제한이 있는 대회 규정상, 중요한 두 번째 투수로 줄곧 차우찬을 언급했다. 하지만 두 경기 모두 차우찬은 두 번째가 아닌 세 번째로 마운드에 올랐다. 코칭스태프가 그를 믿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선수들 입장에서 사기가 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믿었던 김태균-이대호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가운데, 연습경기에서 부진했던 최형우는 마지막 의미없는 타석에 대타로 들어섰다. 이스라엘전 승리를 예상해, 양현종을 대만전에 일찍 고정한 것도 문제다. 이스라엘전에 패했으면, 전력과 일정상 내일이 없는 네덜란드전에 가장 좋은 투수를 내보내는 게 맞는데, 우규민을 고집했다가 기선 제압을 당했다. 이제 에이스 양현종은 큰 의미 없는 대만전 선발로 나설 처지가 됐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9일 대만전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재 대표팀 분위기다.
고척=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