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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의 밥상인터뷰] 송창식 "혹사? 나는 기회의 소중함을 안다"

나유리 기자

기사입력 2017-01-30 22:24


스포츠조선과 인터뷰 중인 송창식.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제가 괜찮다고 했는데 갑자기 수술하게 돼서 솔직히 창피했죠."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무장해제'가 된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KBO리그를 대표하는 얼굴들과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야구장에서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깊은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밥상인터뷰] 일곱번째 손님은 한화 이글스 송창식(32)이다. 팀 선배인 김태균과 함께 사이판에서 개인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송창식을 지난 24일 대전구장 근처 전통 다과집에서 만났다. "구정 연휴를 한국에서 보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웃은 송창식은 떡국 한 그릇을 맛있게 먹었다.

보통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인간승리', '혹사 등판' 등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하지만 송창식은 그 모든 수식어를 거부하고 싶단다.

어렵게 걸어온 만큼 더 오래 야구하고 싶고, FA(자유계약선수) 계약으로 자신의 가치도 당당히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송창식이 간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갑자기 수술을 결정한 이유

-작년 8월 24일 넥센전(1⅓이닝 3실점 패전)이 마지막 등판이었다. 이후 팔꿈치 통증이 생겼고,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0월 11일 결국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정말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 어제까지 괜찮다가 오늘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러운 통증의 이유가 무엇이었나.

일본 병원으로 건너가서 검진을 받았다. 뼛조각이 돌아다니다가 팔꿈치 안쪽에서 충돌이 일어나 염증이 생겼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재활이었다. 그런데 결국 수술을 하기로 한 이유는.

일본에 머물면서 열흘 정도 재활을 했더니 상태가 괜찮더라. 시즌이 끝나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복귀를 염두에 두고 캐치볼을 시작했는데, 변화구를 던질 때 갑자기 아팠다. 다시 검진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언젠가는 해야 할 수술이다. 내년 개막전 합류를 생각하면 빨리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권유했다. 그래서 받기로 했다.

-사실 팔꿈치 수술이 처음은 아니다. 프로 2년 차였던 2005년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를 받았는데.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그때는 정말 큰 수술이었고, 재활 기간도 길어 힘들었다. 이번에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처음 공을 만질 때 느낌부터 그때와 다르더라.

-현재까지 재활 경과는 어떤가.

상태가 좋다. 이제 수술한 지 3개월이 훌쩍 넘었는데 예감이 괜찮다. 사이판에 들어가면서부터 공을 만졌고, 따뜻한 곳에서 캐치볼을 하면서 감각을 점검했다.

-1월 31일부터 시작하는 스프링캠프에 정상 합류할 수 있나.

일단은 재활조에서 시작한다. 구체적인 스케줄은 감독님이 정해주시겠지만, 재활조에서 상태를 점검하면서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정규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될 수 있나.

현재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개막전에 정상적으로 합류하고 싶다. 캠프 잘 보내고, 시범경기까지 치르면 가능하다. 컨디션이 좋다

-한화는 '지옥 훈련'이 유명하지 않나. 재활 선수로 캠프에 가도 마찬가지인가.

어떻게 될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보통 재활 선수들은 다른 스케줄로 운동한다. 감독님 부임 첫해에는 정말 힘들었다. 죽을 뻔했다.(웃음) 그래도 지난해에는 몸이 적응하더라. 특히 불펜 피칭을 할 때 감독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시니까 그게 가장 어렵다. 어린 선수들은 더 긴장되고 힘이 들어갈 수 있다. 물론 투수들도 힘들지만, 야수들은 훈련 강도가 더 높다. '지옥 훈련'이 맞다.(웃음)

◇혹사 논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수술이 아쉬운 이유는 시즌을 온전히 마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정말 아쉬웠다. 솔직히 창피했다. 내가 많이 던져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왔는데. 갑자기 아파 버리니까…. 그렇게 시즌을 마친 것이 아쉽고 허무했다.

-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쳤다면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있나.

다른 것보다 평균자책점을 낮추고 싶었다.(2016년 평균자책점 4.98 기록) 초반에 워낙 안 좋아서 높이 치솟았었는데, 4점 초반대까지 떨어트렸다가 후반기에 다시 올랐다. 그 부분이 아쉽다.

-많은 야구인들이 너무 많이 던져 부상이 왔다고 생각한다.

자꾸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사실 부담스럽다. 한화는 나 혼자만의 팀도 아니고, 다른 선수들도 있다. 주위에서는 걱정해주셔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시즌 중이었기 때문에….

-2015시즌에 109이닝을 던졌고, 지난해에는 시즌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도 97⅔이닝을 던졌다. 불펜 투수로서 엄청난 이닝 소화다. 잦은 등판과 투구 이닝이 무리는 아니었나.

솔직히 2015년은 꾸역꾸역 던졌다. 몸 컨디션이 생각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스스로 이기고 싶어서 억지로 던졌다. 그런데 작년에는 달랐다. 시즌 초반까지는 정말 안좋았다. 잃어버린 밸런스를 찾으려고 죽자사자 노력했는데, 성과가 있었다. 시즌 중반부터 컨디션이 최상으로 치고 올라왔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팔꿈치 통증이 더 아쉬웠다.

-보직이 일정하지 않고, 등판 간격도 잦다. 솔직히 힘들지 않나.

솔직히 대답한다. 문제없다. 입에 바른 대답이 아니라 정말로 선수는 경기에 많이 나갈수록 좋은 것이다. 나는 뛰지 못하는 선수의 마음을 안다. 임의탈퇴에서 복귀했을 때 나는 크게 지는 경기에만 나가는 투수였다. 처음에는 기운이 안 났다. 긴장감이 없는 상태에서 등판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있어야 필승조도 있고, 마무리 투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달라졌다. 그때부터 야구가 잘됐다.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기는 경기에 더 많이 등판하게 됐다.

-기회에 대한 간절함을 알기 때문에 얻은 깨달음일까.

그렇다. 기회가 없는 선수가 더 힘들다. 아직 그런 말을 할 연차는 아니지만, 후배들도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프로니까 모두 간절하겠으나 보직에 집착하지 않을수록 더 좋은 기회가 오더라.


"특별히 즐겨먹는 음식도, 챙겨먹는 음식도 없어요. 그냥 밥 많이 먹는 게 최고죠."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이젠 건강한 이미지가 좋아요"

-스스로 생각했을 때 20대 송창식은 어떤 선수였나.

아프기 전에는 나는 열심히 안 하는 선수였다. 그냥 노력을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내가 가진 걸로 대충 하다 보면 언젠가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버거씨병(폐쇄성 혈전혈관염)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치병을 이기고 돌아온 선수라 더 주목받았다. 언제 병을 처음 알게 됐나.

2008년 스프링캠프가 끝나고, 2군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2군에서 경산 원정 경기를 갔는데 갑자기 오른손 마디마디가 파랗게 됐다. 시간이 지나자 손 전체가 파래졌고, 팔 전체로 번졌다. 큰일 났다 싶었다. 병원 검진을 받아보니 버거씨병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구단에 임의탈퇴를 요청했나.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2008시즌을 보내다가 임의탈퇴로 마음을 먹었다. 먼저 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를 그만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고, 치료가 먼저였다. 그래서 본가인 청주에 갔다.

-모교인 세광고 코치로 잠깐 있었는데.

사실 그때 코치로 일했던 것은 내가 직업이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당시 감독, 코치님이 내가 학교 다닐 때 계셨던 분들이다. 그분들이 나를 도와주셨다. 그냥 용돈을 줄 수 없으니 후배들의 훈련을 도와주면서 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렇게 재활을 했다.

-상태가 좋아진 것은 언제인가.

2009년 6월이다. 정말 기적적으로, 말도 안 되게 팔이 좋아졌다. 의학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원래 젓가락질도 몇 번 못할 정도로 안 좋았다. 팔이 저리는 느낌이 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좋아졌다. 아프다고 해서 특별한 관리를 한 것도 아닌데 상태가 호전되자 세광고 아이들에게 캐치볼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다시 구단에 찾아갔다. 야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2010년 3월 다시 한화와 계약을 했다. 정확히 2년이 걸렸다.

-팔 상태가 좋아진 후 다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았나. 뭐라고 하던가.

병원은 그냥 안 갔다.(웃음) 그 후로도 드문드문 그런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다. 완벽히 정상 상태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는 진단서에 '평생 치료를 요함'이라고 쓰여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기적 같다.

-2년 만에 야구장에 돌아온 후에는 어땠나.

돌아왔을때 나는 2군에 있었다. 어릴 때는 동기들이 나보다 잘하면 질투가 나곤 했는데, (최)진행이가 잘하는 걸 보니 그렇게 좋더라.(최진행은 2010시즌 풀타임을 뛰며 32홈런-92타점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다) 마치 내 일처럼 좋았다. 그때부터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야구를 떠나있을 때 마음가짐이나 간절함 모든 게 달라졌다.

-늘 '인간승리', '불치병 극복' 이런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솔직히 싫다. 운동선수는 건강한 이미지가 있어야 하는데 자꾸 '투혼'이나 '인간 승리'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이 달갑지는 않다. 그나마 요즘엔 잊혀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건강하다.(웃음)

-아팠을 때도 그렇고 식단 조절이나 특별한 관리를 하지는 않는 편인 것 같은데.

특별히 챙겨 먹는 것 없고 무조건 잘 먹는다. 그냥 밥을 많이 먹는다.(웃음) 보양 음식 챙겨 먹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냥 잘 먹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송창식은 "FA 그리고 박정진 형보다 오래 야구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송창식의 꿈 FA, 그리고 오래오래 야구하기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서 하고 싶다.(웃음)

-아직 포스트시즌 경험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 일부러 다른 팀들 포스트시즌 경기는 텔레비전으로도 안 본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우승은 꿈이지 않나. 많은 관중 앞에서 공을 던지면 짜릿짜릿할 것 같다. 관중들로부터 에너지를 많이 받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주말 홈 경기가 신난다.

-한화 선수로서, 한화 경기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장점과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내가 이야기하기에 조심스럽기도 한데, 한화의 좋은 점은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팀이 조금 더 똘똘 뭉쳤으면 좋겠다. 물론 지금도 선수단 분위기는 더없이 좋다. 하지만 다 같이 투지로 뭉치는 분위기까지 생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2017시즌 욕심나는 개인 목표가 있나.

많은 경기에 나가고 싶다. 선수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큰 행운이다. 그만큼 팀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올해 내 목표도 변함없다. 무조건 많은 경기에 나가고 싶다. 물론 아프지 않고.

-야구선수로서, 투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야구를 오래 하고 싶다. 또 프로야구 선수가 된 만큼 FA도 한번 해보고 싶다. 야구는 (박)정진이형보다 오래 하고 싶다.(웃음) 평소에 정진이형을 유심히 지켜본다. 라커룸도 옆에서 쓰는데, 나보다 9년 이상 선배인데도 몸 관리가 정말 엄청나다. 챙겨 먹는 것도 엄청 많다.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으니 나만의 지구력으로 승부를 해보겠다.

-늘 송창식을 걱정하는 한화팬들이 많다.

팬들께서는 나를 보면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하신다.(웃음) 정말 괜찮다. 올해도 많은 경기에 나가서 건강한 모습으로 야구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에게 보답하겠다. 포스트시즌 진출이나 성적 장담은 하지 않겠다. 왜냐면 내가 이야기하면 꼭 안되더라.(웃음) 팀 연승도 내가 언급하면 끊기니까 장담은 하지 않겠다.


대전=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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