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명' 장정석 감독이 넥센 히어로즈 신임 사령탑이 됐다.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사람들도 깜짝 놀랐던 파격인사. 이장석 히어로즈 구단 대표가 비밀리에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 무명 시절을 보냈고, 한번의 코치경험도 없던 지도자. 일부 기존 코치들은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넥센 구단은 염경엽 감독의 자진 사퇴 이후 감독 선임 가이드 라인을 분명히 했다. '자기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 구단의 시스템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인물.' 이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우선 조건이었다.
장 감독 선임은 '지금의 넥센을 만든 것은 이장석 대표와 프런트의 시스템 야구'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의미에선 감독을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가 아닌, 거대한 구단 시스템 하의 볼트와 너트처럼 대체가능한 요소로 판단한 셈이다.
야구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개인에게 부여되는 승패를 투수(많은 경우 선발투수)와 나눠진다. 승수는 투수와 감독에게만 주어진다. 다시 말해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자리라는 뜻이다. 전세계 야구리그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장 먼저 옷을 벗는 이는 감독이다. 시스템이 중요하고, 야구는 선수가 하고, 기술은 코치가 전달하고, 육성은 오로지 구단 몫이라고 한다면 성적이 나빠도 감독이 지탄받을 일이 없다. 반대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도 감독이 명장 소리를 듣는 것은 과분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좀더 세분화되고, 때로는 강한 개별요소의 색깔을 인정하기도 한다. 한국은 다르다. 장유유서 등 동양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14일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5차전에서 LA 다저스는 0-1로 끌려가다 작 피더슨의 동점홈런 뒤 타선이 폭발해 4대3으로 승리했다. 경기 후반 역전에 성공하자 메이저리그 3년차인 피더슨은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에게로 다가가 사령탑의 가슴을 밀치며 기쁨을 포효했다. 로버츠 감독도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로 답했다. 한국에선 이런 장면이 연출될 수 없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좋다, 저것이 나쁘다고 논할 문제가 아니다.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 뿐이다. 개인주의가 충만한 미국보다 한국의 따뜻한 정에 감동을 받는 외국인 선수도 많다.
장 감독은 두배 세배 힘든 길을 걷게 된다. 잘할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성적이 나쁘면 경험부족 얘기가 분명히 나올 것이고, 코치진과 선수들의 보이지 않는 선입견과 싸워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를 자격지심도 경계해야 한다.
승부의 세계에 있어 맨 앞줄에 서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다. 적임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말이다. 야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전쟁은 보병이 국기를 꽂아야 비로소 끝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 Copyrightsⓒ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