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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산은 강했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
우주의 기운
곤혹을 치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우주가 도운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가끔했다. 비선 실세에 영향을 받은 비합리적 샤머니즘적 발언이라는 의혹도 있다.
2차전 4회까지 두산이 그랬다. 선취점은 중요하다. 1차전 연장 혈투 끝 1-0 두산의 승리. 김재호의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를 김성욱이 조명탑 때문에 타구를 놓치면서 결정적 기회를 제공했다.
2차전 3회까지 팽팽한 투수전. 0의 행진이었다.
두산이 침묵을 깼다. 자세한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선두 민병헌의 타구. 살짝 배트 안쪽에 맞았다. 좌전안타. 텍사스성이 섞여 있었지만, 민병헌의 타격 실력이 좋았다.
김재환 역시 몸쪽 공을 당겼다. 좌익수 앞 안타. 텍사스성 안타였다. 그리고 에반스의 좌전 안타로 무사 만루.
이때 3루 쪽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좌익수 이종욱은 어깨가 강하지 않다. 포구하는 순간, 2루 주자 민병헌은 3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3루 코치는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무사라는 점, 장타력이 좋은 오재일과 양의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 안전한 플레이. 하지만 돌렸다면 세이프가 될 확률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종욱의 송구는 정확하지 않았다. 포수 김태군은 홈 플레이트에서 약 3m 떨어진 지점에서 타구를 받아냈다.
무사 만루 상황에서는 첫 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잘 풀리면 대량 득점, 쉽게 아웃되면 단 1점도 올리지 못할 확률이 올라간다. 오재일은 3루수 파울 플라이. 다음 타자는 병살타가 염려되는 양의지. 하지만 양의지의 빗맞은 타구가 중견수 앞에 뚝 떨어지는 안타가 됐다. 2루수 박민우가 페이크 모션을 썼지만, 3루 주자는 홈을 밟았다. 결국 2개의 텍사스성 안타가 함께 나왔다. 확률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두산은 4회 고대하던 선취점을 얻었다. 이때까지 한국시리즈는 '우주의 기운'이 돕는 두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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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살타 3개면 경기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병살타는 악영향을 준다. 팀 분위기를 저해하고, 흐름을 완전히 깬다.
NC는 2차전에서 이길 수 없는 경기를 했다. 고비마다 병살타였다.
6, 7, 8회 각각 1개씩이었다.(1회 박민우의 타구는 병살타로 기록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에서 3개의 병살타는 '자폭 수준'이다. 더욱 큰 이유가 있다. 두산은 선발진은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중간계투와 마무리로 이어지는 구간에 약점이 있다. 1차전에서 이용찬과 이현승이 잘 던졌지만, 아킬레스건은 변함없다. 즉, NC 입장에서는 선발을 최대한 빨리 무너뜨릴 수록 승산이 커진다. 두산의 정 반대다.
두산 선발 장원준은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그런데 6회부터 조금씩 볼 끝과 변화구가 무뎌지기 시작했다. NC 입장에서는 좋은 타구가 많이 나왔다. 6회 1사 이후 이종욱의 안타, 7회 1사 이후 테임즈의 우전 히트, 그리고 8회 선두 이호준의 우전안타까지.
그런데 박민우(6회) 박석민(7회) 지석훈(8회)이 모두 병살타를 기록했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두산의 키스톤 콤비가 강하다는 의미. 두산의 최대 강점이다. 6회 2루수 오재원은 빠른 타구 처리로 스피드가 뛰어난 박민우를 1루에서 여유있게 아웃시켰다. 7회 박석민은 느린 타구는 김재호가 반 박자 빠르게 처리했다. 8회 모창민의 번트는 실수였다. 장원준이 잡아서 1-6-3으로 연결했다. 결국 NC는 흐름 자체를 완전히 놓쳐 버렸다. 8회 4개의 안타를 집중시켰지만, 단 1점만을 만회했다. '나테박이'가 침묵하고 있지만, 두산 선발진이 워낙 좋아 어쩔 수 없다. 중요한 점은 '디테일'에서 결정적 순간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두산이 2연승을 거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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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NC는 천신만고 끝에 1-1 동점을 만들었다. 분위기는 NC로 넘어가는 듯 했다. 한국 시리즈 전체로 볼 때 1승1패면 NC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8회까지 완벽한 투구를 펼치던 해커가 이상해졌다. 선두타자 박건우에게 커브를 던지다 어이없는 사구를 내줬다. 순식간에 위기에 빠졌다.
결국 희생번트, 그리고 민병헌의 유격수 앞 땅볼로 2사 3루. 위기만 넘기면 NC가 분위기 상 좀 더 유리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해커가 던진 패스트볼이 교체된 포수 용덕한의 키를 넘어 백네트로 향했다. 결국 3루 주자 박민우는 그대로 홈을 밟았다. 결정적 실투. 9회 2개가 집중된 게 아쉬웠다.
홈 수비 도중 박건우의 허벅지와 무릎을 밟기도 했다. 결국 해커는 이때부터 무너졌다. 김재환에게 우측 펜스 넘어가는 솔로홈런, 에반스에게 펜스를 직접 때리는 2루타를 허용한 뒤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전체적 경기 흐름을 보면, NC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산에 허락된 '약간의 행운'(야구에서 운도 실력이다), NC의 디테일 부족과 갑작스러운 해커의 2개 실투가 승패를 갈랐다. 두산 입장에서는 '우주의 기운'이, NC 입장에서는 짙은 아쉬움이 느껴진 한판이었다. 잠실=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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