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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를 사이에 둔 부부는 울었다. "나 첫승했어"라는 말도 못하고 눈물만 연신 닦다가 결국 전화를 끊었다.
20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난 황덕균은 인터뷰 중 몇 번이나 눈물이 고였다.
-드디어 첫승을 했다.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텐데 소감이 어땠나.
-'깜짝 스타'가 됐는데 축하 전화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어제(20일) 새벽 2시 30분쯤에 광주 도착했는데 잠을 못잤다. 머리털 나고 이렇게 많은 연락을 받은게 처음이다. 카톡 메시지가 180개 와서 전부다 스팸인줄 알았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지인들, 전 팀 동료들, 동생들이더라. 고마워서 일일이 답변하느라 잠을 잘 못잤다. 프로야구 선수가 된 이후 첫번째로 행복했던 날이다.
-야구 인생 굴곡이 많은 선수로 알려져있다.
프로 15년차라고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야구했던 시간은 8년이다. 7년의 공백 기간 동안 군대도 가고, 사회인 야구도 하고, 일본 독립리그에도 있었다. 2002년 2차 4라운드로 두산에 입단했었다. 아마추어때 실력만 생각하고 프로에 오니까 벽에 부딪혔다. 실력 좋은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안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운동을 안했다. 의욕을 잃었다.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프로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나왔는데 결국 다시 야구가 그리워서 돌아왔다.
-언제 다시 돌아오고 싶던가.
두산 고영민과 절친한 친구다. 친구의 한마디에 다시 야구를 하게 됐다. '다시 하면 되는데 왜 안해? 돌아와.' 두산 시절 인연을 맺었던 김경문 감독님의 이야기도 계기가 됐다. 당시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나를 만난 감독님이 '야구를 다시 해라. 할 수 있는데 왜 안하냐'고 이야기 하셨다. 결국 외국에서 유학을 하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갔다. 당시 지인을 따라서 중국, 일본에서 공부도 하고 여러가지를 배우러 갔는데 야구 선수가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야구를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테스트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받아주겠다는 팀이 없었다. 나이도 많고(당시 28세) 1군 기록도 없으니 잘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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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생팀만 두 번 겪었다. 신생팀은 어린 선수들을 키워야 한다. 나 역시 그것을 알고 도전했다. 이곳은 결국 냉정한 승부의 세계다.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가 갈 수 밖에 없고 당연하다고 납득했다. NC를 떠날 때는 더 어려서 '왜 나한테 기회를 안주지?'하고 원망했다. 하지만 kt를 떠날 때는 '나는 신생팀의 페이스메이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선수들이 신생팀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야구를 그만 두고 싶지 않았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아직까지 야구해?', '이제 그만둬'였다. 내가 정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코치님들이 잡아주셨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용기를 주신 분들이 많다.
-넥센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kt와의 계약이 우여곡절 끝에 불발되고,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실업자였다. 거의 포기를 해서 운동도 안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그때 넥센에서 '테스트를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장석 대표님은 내게 정말 고마운 분이다. 대표님이 나같은 선수를 눈여겨보고 기회를 줘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니면 나는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넥센 2군에 머물 때는 어린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그런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긴 시간 동안 내가 여태까지 봐왔던 것들을 이야기해주니 후배들도 잘 따라줬다. 넥센 2군이 올해 성적은 안났지만 원석처럼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다. 장담할 수 있다.
-염경엽 감독은 남은 기간 동안 더 많은 기회를 줄거라고 이야기 했다. 앞으로 이기는 경기에도 더 많이 등판할 것 같은데.
지금 1군에 있는 자체가 꿈같다고 해야하나?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선수들이 '금메달이라도 땄냐'고 놀리기도 하지만 행복하다. 만약 포스트시즌 무대까지 밟을 수 있다면 가문의 영광일 것 같다. 그동안 나랑 친했던 선수들은 모두 잘됐는데 나만 안됐다. 아내도 '당신 옆에 있는 사람들 다 잘됐는데 왜 당신만 안되냐"고 농담을 하곤 했다.
-야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보람을 느낄텐데.
그동안 내게 '야구를 그만둬라. 비참하지 않냐. 어차피 안된다. 너에게 기회가 안간다. 이제 가족들을 생각해야하지 않냐'고 이야기 해준 사람들이 많았다. 냉정하게 맞는 말이다. 틀렸다고 생각은 안했다. 현실적으로 나는 아내와 아들, 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집안의 기둥이다.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었는데, 그렇게 이야기 했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덕균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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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데까지 하고 싶다. 사실은 아내가 그만두라고 할때 그만둬야 한다. 허락이 필요하다. 지금을 계기로 해서 후배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선배'로 보이고 싶다. 나같은 선수는 분명히 또 있다. 사회인야구나 독립리그에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면서 다시 도전하기를 바란다. 인생은 늘 도전이 아닌가.
-첫승을 하고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는 영화다. 고등학교 2학년때 만난 아내는 내 첫사랑이다. 사귀다가 프로 입단하고 차였다. 야구 선수랑 사귀기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헤어지고도 10년 동안 연락은 가끔 하고 지냈는데, 이 사람이랑 무조건 결혼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 2011년 SK 입단 테스트에 탈락했을때. 아내가 '이 사람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2년 후 NC 2군에서 10승을 하고 바로 결혼했다. 올해 아들이 4살, 딸은 2살이다. 첫승을 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끊었다. 아내가 하도 울어가지고…. 나도 눈물이 많아서 서로 울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새벽 5시에 내가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지금까지 돈을 많이 못벌어줬지만 꿈만 생각하며 야구하는 것을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길을 잡아준 사촌형과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나는 이 나이까지 부모님 도움을 받는 미안한 아들이다. 아버지, 어머니도 좋아하셨다. '이거 하나 보려고 여태까지 왔구나'라고 기뻐하셨다. 내게도 행복한 날이다.
광주=나유리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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