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교체는 가장 어렵고도 민감한 전략 요소다. 한 명의 투수를 내기 전까지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수많은 배경 요소들을 고려한다. 가용 인원과 각자의 컨디션, 그리고 상대 타자와의 데이터. 뿐만 아니다. 그 투수를 낸 이후의 상황 변화까지도 고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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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8회에 의외의 투수교체가 나왔다. 이전까지 한화는 꽤 성공적으로 투수를 바꿔가며 실점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어차피 전날 우천 취소로 인해 투수진에 여력이 있던 한화는 이날 투수 총력전이 예상됐던 상황이다. 대체선발 송신영이 1⅔이닝만에 내려간 뒤 심수창-이태양-장민재-권 혁을 쓰면서 7회까지 2점으로 막았다. 5회초 무사 만루를 1실점으로 막았고, 7회초에도 1사 1, 2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김성근 감독이 늘 해왔던 방식으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그런데 8회초 2사 1, 3루에서 한화 벤치는 6번째 투수로 우완 언더핸드 정대훈을 투입했다. 7회 1사 1, 2루 위기를 넘긴 권 혁은 8회초 선두타자 민병헌에게 2루타를 맞았다. 김재환과 양의지를 범타 처리했지만 에반스에게 볼넷을 허용하자 벤치가 움직였다. 우타자 허경민 타석이었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허경민에 대한 상대 성적이다. 정대훈은 허경민에게 5타수 1안타로 강했다. 반면 정우람은 5타수 3안타였다. 게다가 정대훈의 우타자 피안타율(0.200)도 정우람(0.222)보다 낮았다. 그리고 허경민 차례에 굳이 투수를 바꿔 권 혁과 같은 유형의 정우람을 투입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타이밍을 끊고 아웃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투구 유형의 정대훈이 적합했다.
두 번째 이유는 경기 막판 운용이다. 만약 8회를 무실점으로 막았다고 해도 여전히 스코어는 1-2로 뒤져있다. 8회말과 9회말 공격에서 역전을 만들지 못할 경우 연장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정우람을 먼저 투입하면 연장 접전에서 투수 운용이 버거워질 수 있다. 우천 휴식은 두산에도 마찬가지 상황인데다 두산은 선발 유희관이 7회까지 버텨준 덕분에 불펜 여력이 더 많다. 그래서 정대훈이 8회초를 실점없이 막아준다면 그 이후 불펜 운용 계산이 한층 간결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김성근 감독의 계산은 현실 앞에 무너졌다. 다소 운이 없었다. 정대훈은 초구 변화구로 허경민의 범타를 유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빗맞은 타구가 우익수 앞쪽에서 뚝 떨어지며 실점이 됐다. 깊숙한 위치에 있던 양성우가 열심히 달려나왔지만 공을 잡을 수 없었다. 수비 위치 조정이 아쉬웠던 부분이다. 이 타구가 잡혔더라면 정대훈은 불펜에서 좀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화에도 정대훈에게도 모두 불행한 장면이었다. 이후 나온 폭투 실점은 정대훈을 탓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대훈의 투입은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결과가 나빴을 뿐이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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