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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정대훈 카드, 실패했지만 틀리진 않았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6-07-03 08:54


투수 교체는 가장 어렵고도 민감한 전략 요소다. 한 명의 투수를 내기 전까지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수많은 배경 요소들을 고려한다. 가용 인원과 각자의 컨디션, 그리고 상대 타자와의 데이터. 뿐만 아니다. 그 투수를 낸 이후의 상황 변화까지도 고려한다.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2016 프로야구 경기가 2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한화 정대훈이 8회말 등판해 공을 던지고 있다.
고척돔=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6.2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실패의 요소가 잠재돼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당장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게 투수 교체다. 하지만 비록 결과가 안좋았을지라도 왜 그러한 교체가 이뤄졌는지를 따져보고 그 의미를 재평가할 필요도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야구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한화 이글스는 두산 베어스와 홈경기를 치렀다. 경기 막판까지 타이트한 1점차 승부가 이어졌다. 한화는 이전까지 상대전적에서 7승무패를 기록하던 '천적' 유희관을 상대로 1점 밖에 뽑지 못했지만, 두산 타선에도 7회까지 2점만 허용한 상태였다.

여기서 8회에 의외의 투수교체가 나왔다. 이전까지 한화는 꽤 성공적으로 투수를 바꿔가며 실점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어차피 전날 우천 취소로 인해 투수진에 여력이 있던 한화는 이날 투수 총력전이 예상됐던 상황이다. 대체선발 송신영이 1⅔이닝만에 내려간 뒤 심수창-이태양-장민재-권 혁을 쓰면서 7회까지 2점으로 막았다. 5회초 무사 만루를 1실점으로 막았고, 7회초에도 1사 1, 2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김성근 감독이 늘 해왔던 방식으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그런데 8회초 2사 1, 3루에서 한화 벤치는 6번째 투수로 우완 언더핸드 정대훈을 투입했다. 7회 1사 1, 2루 위기를 넘긴 권 혁은 8회초 선두타자 민병헌에게 2루타를 맞았다. 김재환과 양의지를 범타 처리했지만 에반스에게 볼넷을 허용하자 벤치가 움직였다. 우타자 허경민 타석이었다.

1점차의 경기 막판임을 감안하면 확실한 필승조를 투입해 실점을 막고 8, 9회 동점이나 역전을 노리는 게 이전까지 김성근 감독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박정진이나 정우람의 투입이 예상됐지만, 막상 마운드에 올라온 건 정대훈이었다. 정대훈은 추격조로 그간 활용도가 적었다. 이런 타이트한 상황에 쓰기에는 다소 불안해보였다. 왜 정우람이 아닌 정대훈이었을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허경민에 대한 상대 성적이다. 정대훈은 허경민에게 5타수 1안타로 강했다. 반면 정우람은 5타수 3안타였다. 게다가 정대훈의 우타자 피안타율(0.200)도 정우람(0.222)보다 낮았다. 그리고 허경민 차례에 굳이 투수를 바꿔 권 혁과 같은 유형의 정우람을 투입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타이밍을 끊고 아웃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투구 유형의 정대훈이 적합했다.

두 번째 이유는 경기 막판 운용이다. 만약 8회를 무실점으로 막았다고 해도 여전히 스코어는 1-2로 뒤져있다. 8회말과 9회말 공격에서 역전을 만들지 못할 경우 연장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정우람을 먼저 투입하면 연장 접전에서 투수 운용이 버거워질 수 있다. 우천 휴식은 두산에도 마찬가지 상황인데다 두산은 선발 유희관이 7회까지 버텨준 덕분에 불펜 여력이 더 많다. 그래서 정대훈이 8회초를 실점없이 막아준다면 그 이후 불펜 운용 계산이 한층 간결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김성근 감독의 계산은 현실 앞에 무너졌다. 다소 운이 없었다. 정대훈은 초구 변화구로 허경민의 범타를 유도하려고 했다. 그러나 빗맞은 타구가 우익수 앞쪽에서 뚝 떨어지며 실점이 됐다. 깊숙한 위치에 있던 양성우가 열심히 달려나왔지만 공을 잡을 수 없었다. 수비 위치 조정이 아쉬웠던 부분이다. 이 타구가 잡혔더라면 정대훈은 불펜에서 좀 더 많은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화에도 정대훈에게도 모두 불행한 장면이었다. 이후 나온 폭투 실점은 정대훈을 탓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대훈의 투입은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결과가 나빴을 뿐이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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