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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은퇴 서재응-최희섭, "타이거즈 마음속에 간직하겠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6-05-15 15:06

'굿바이, 나이스&빅!'

KIA 타이거즈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 2명과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타이거즈 구단의 연고지인 광주에서 나고 자라 '타이거즈 입단'을 꿈꾸며 야구를 했던 두 거목이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은 채 KIA 홈팬 앞에 섰다. 홈 팬들은 손수건을 흔들며 두 명의 영웅, 서재응(39)-최희섭(37)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미래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KIA 동료와 후배들은 이날만큼은 모두 서재응(투수)과 최희섭(야수)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KIA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최희섭(왼쪽)과 서재응이 15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합동 은퇴식을 치렀다. 은퇴식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나눈 최희섭과 서재응. 광주=이원만 기자wman@sportschosun.com
코리안 메이저리거 1세대이자 KIA에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던 서재응과 최희섭이 공식 은퇴식을 치렀다. 이들은 15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리는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 앞서 구단이 마련해 준 화려하고 정성스러운 은퇴식을 함께 치렀다. 두 선수는 나란히 "이런 은퇴식은 전혀 생각치 못했는데, 구단 측에서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돌이켜보면 서재응과 최희섭은 대단히 깊은 인연으로 묶여 있다. 2년 터울로 광주 충장중-광주제일고를 함께 다녔고, 이후 대학(서재응 인하대, 최희섭 고려대) 시절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며 드넓은 미국에서도 같은 팀(2006년1월~3월 LA다저스, 2006년 6월~2007년 6월 탬파베이 레이스)에 있었다. 최희섭이 먼저 고향팀 KIA로 돌아왔고, 뒤따라 서재응도 2007년말 한국에 컴백했다. 이후 이들은 2015년까지 타이거즈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으며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합작했고, 끝내 같은 날 함께 은퇴식을 치르게 됐다. 환하게 웃는 가운데에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다음은 서재응-최희섭과의 일문일답.

-은퇴식을 치르게 된 소감은?

서재응 : 구단에서 은퇴식을 해줄거라고 생각치 못했는데, 이렇게 따로 챙겨주시고 또 희섭이와 함께 은퇴식을 하게 돼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타자와 함께 은퇴식을 치르게 돼 나로서는 영광이다. 구단에 정말 감사드린다.

최희섭 : 미국 연수하고 있을때 은퇴식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오늘 재응이형과 함께 하게 되어 정말 좋고, 특히 생각안하고 있던 상태에서 은퇴식을 마련해 준 구단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

-오늘 은퇴식에서 2009년 우승 때 유니폼을 입었는데


서재응 : 소원이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는데, 당시에 크게 기여는 못했지만 무척 기뻤다. 이렇게 우승 유니폼을 다시 입으니 기분이 새롭다. 당시 생각도 나고.

최희섭 : 한국 처음 들어왔을 때 목표로 세운 게 팀의 한국시리즈 10번째 우승이었다. 그게 가장 큰 목표였다. 비록 현역시절 좋았던 모습과 안좋았던 모습이 있었지만, 적어도 나 자신과의 약속(한국시리즈 우승)은 지켰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우승 외에 선수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서재응 : 미국에 가서 처음 25인 로스터에 들어가 홈개막전 때 덕아웃 앞에 도열해서 내 이름이 호명됐을 때였다. 그 순간이 가장 감격스러웠다. 또 한국에 돌아와서 당시 조범현 감독님과 이강철 투수코치님을 만났을 때도 기억난다. 그 분들로부터 투수에 대한 내 선입견을 바꾸는 새로운 야구를 배웠다. '투수는 꼭 이렇게 해야 한다'든가 투구폼이라든가에 관한 내 선입견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최희섭 : 나는 세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미국에서는 투수와 달리 타자는 안된다는 편견을 깨고. 포지션 플레이어로 1루수로 뛰었을 때다. 또 2006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전도 생각난다. 그때 굉장히 힘들고 슬럼프에 빠져 있었는데, 미국전에 홈런을 치면서 팀이 이겼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는 2009년 정규시즌 마지막 타석 때다. 그때 3점 홈런을 쳐서 3할-30홈런을 결국 해냈을 때가 생각난다.

-아쉬웠던 순간이 있다면

서재응 : 조범현 감독님이 계셨을 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잘 못보여줬다. 일단 부상이 많았다. 감독님을 세 분(조범현 선동열 김기태) 모시고 은퇴하게 됐는데, 몸상태가 안좋을 때 만났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래도 한때 '콘트롤 아티스트'라고 불려서 팬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저를 보러 오셨을 텐데 서재응답지 못한 야구를 했던 게 아쉽다.

최희섭 : 메이저리그에서 좀 더 오래할 수 있는 몸상태였으면 좋았을텐데 2003년 뇌진탕 이후 여러 안좋은 모습을 팬들께 보여드렸다. 사실 2003년 뇌진탕 사건 당시 '내 야구인생은 끝났다'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그래도 이후로 12년이나 더 야구를 할 수 있던 게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몸만 건강했다면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더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건강이 안좋다보니 안좋은 모습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런점이 가장 아쉬웠다.

-선수 은퇴 이후 바라보는 야구는 어떻게 달라졌나

서재응 : 확실히 다른 게 있다. 팀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에서 야구를 보면 조금씩 보이는 게 있다. 선수로 생각할 때와 선수 은퇴하고 시청자의 눈으로 볼 때 고쳐야할 점들이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은퇴는 2~3년전부터 준비해왔다. 어느 한 순간에 홧김에 결정한 게 아니다. 솔직히 아주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후회되거나 아쉽진 않다. 무엇보다 조범현 감독님께 가장 미안하다. 우리 '두 꼴통 메이저리거'들 만나셔서 다 맞춰주시고 했는데, 선동열 감독님께도 죄송하긴 마찬가지다.

최희섭 : 미국 연수를 통해 코치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사실 나같은 선수를 코치로서 만났다면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에는 배팅볼을 그냥 치기만 했었는데, 미국 연수에서 배팅볼을 직접 던져보니까 좀 알겠더라. 선수들이 알아서 잘 따라주고 했다면 편했을 텐데. '나처럼 부상이 많고, 경기를 못 뛰는 선수를 만나면 코치님들이 힘드셨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면서 코치님 특히 감독님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최희섭 : 비록 방송을 시작하지만, 김기태 감독님도 시간이 되면 야구장에 와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라고 그러셨다. 나 역시 비록 팀을 떠나지만 마음 속으로는 늘 타이거즈에 도움이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서재응 : 당부라고 할 건 크게 없다. 무엇보다 궂은 일을 내가 맡아서 한다는 생각만하면 팀이 잘 돌아간다. 누구나 힘든 일, 힘든 경기를 하고 있으니까 서로에 대한 배려만 잘 하면 성적을 떠나 팀 분위기는 좋아질 것이다.

-일단 방송인으로 변신했는데, 향후 계획은? 코치 복귀 의향도 있나

서재응 : 나같은 경우에는 (야구)공부를 하려고 방송을 선택했다. 방송을 하면서 막혀있던 생각들을 넓히고, 더 많은 공부를 하려고 한다. 그런 뒤에 팀에서 불러준다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같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코치로 돌아올 준비도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최희섭 : 다음주부터 방송을 시작하는데, 방송 시즌에는 방송을 열심히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교육리그나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도 볼 계획이다. (연수를 했던) 미네소타 구단과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놨다. 그래서 현장 코치 연수도 계속 진행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KIA 타이거즈에서 좋은 코치가 되고 싶다. 현역 때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더 공부해서 복귀하고 싶다.

-두 사람에게 '타이거즈 구단'이란

서재응 : '타이거즈'라고 하면 어렸을 때 야구를 하면서 무조건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야구를 해 왔기 때문에 '타이거즈는 내 삶의 길'이었다. 내가 야구를 하는 건 타이거즈를 향해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타이거즈를 향해야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앞으로도 내가 찾아가야 할 길이다.

최희섭 : '타이거즈는 꿈'이다. 광주 호남쪽에서 야구를 한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뛰어난 선배님들이 우승도 많이 하시고 그런 팀이었다. 그런 선배님들을 보면서 꼭 타이거즈에서 뛰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메이저리거로 꿈이 잠시 바뀌기도 했었지만, 언젠가는 올 수밖에 없는 팀이었다. 그런 꿈이 있었다. 항상 마음속에 타이거즈가 남아있을 것 같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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