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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풀어가면 좋고 흔들리면 이닝에 상관없이 바로 교체 사인이 나온다. 시즌 초반 수렁에 빠진 한화 이글스에는 '선발 투수'가 없다. 경기 전체를 끌어가는 책임이 주어진 게 아니라, 단순히 가장 먼저 등판하는 투수가 '선발'이다. 선발 투수가 중심을 잡고 가야하는데, 한화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몇몇 선발 요원들의 부상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김성근 감독의 투수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기인한다.
나머지 11경기 중 선발 투수가 4이닝을 넘기지 못한 게 9경기, 3회 이전에 교체된 경우가 3게임이다. 김재영은 지난 2일 LG전에 나와 1⅔이닝 3실점, 6일 히어로즈전에 나서 1⅔이닝 1실점하고 강판됐다. 또 김용주는 지난 14일 두산 베어스전에 등판해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4실점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김 감독은 선발을 빨리 바꾸는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안타를 얻어맞더라도 자기 공을 던지면 그냥 놔둘수도 있다." 결국 투수들이 본연의 투구 밸런스가 무너진 상태에서 제구가 되지 않는 공을 계속 던지고 있기 때문에 바꿀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선발 투수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기계적인 패턴에 따라 교체한 경기가 많았다. 불펜이 강하다면 선발 투수의 조기 강판을 수긍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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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올해 초반 한화의 문제는 명확하다. 1~2회부터 불펜에서 구원 투수가 몸을 푸는 상황에서 선발 투수가 안정적인 투구를 하기는 어렵다.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투수, 감독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생각하는 선수가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덕아웃 눈치를 보기에 바쁘다. 단순한 경기력이 아닌 신뢰 문제이기도 하다.
송진우 KBS N 해설위원은 "설사 선발 투수가 경기 초반 흔들린다고 해도, 일정 이닝을 보장해 줘야 이겨낼 수 있다. 특히 나이 어린 젊은 선수라면 더 그렇다"고 했다. 해당 선수는 의욕이 꺾이고, 후유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감독 야구'를 지향하는 김성근 감독은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자신의 지도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올시즌 한화는 김성근 감독의 조급증으로 인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