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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전향 이형종 자질은 갖췄다, 성공의 조건은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6-04-13 10:44


LG 이형종이 12일 잠실 롯데전에서 7회말 2타점 적시타를 날린 뒤 한혁수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이승엽(삼성 라이온즈)과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가 입단 당시 투수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프로에 들어와 1군 마운드에 오른 적은 없다. 타자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최고 투수의 꿈을 품고 입단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타자로 바꿔 성공을 이룬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한화 김응국 코치로 그는 1988년 투수로 입단해 두 시즌을 활약한 뒤 타자로 전향해 2003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 2할9푼3리, 86홈런, 667타점을 기록했다. 4차례 3할 타율을 올리기도 했던 김응국은 롯데를 대표하는 타자로 기억되고 있다. 투수로는 14경기에서 승패없이 평균자책점 5.24를 기록했다.

선린상고 스타였던 박노준 우석대 교수도 1986년 투수로 OB에 입단해 3시즌 동안 5승7패, 평균자책점 3.13을 올린 뒤 타자로 바꿔 1997년까지 통산 2할6푼2리의 타율과 28홈런, 266타점을 마크했다.

NC 이호준도 1994년 해태 입단 당시 투수였고, 그해 8경기에서 12⅓이닝을 던져 홈런 7개 등 평균자책점 10.22으로 부진을 보인 직후 타자로 전향?다. 이호준은 김성한 당시 타격코치의 지도를 받고 지금의 강타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초석을 마련했다. 이밖에 김건우 이대진 김인철 채태인 등이 투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해 타자로 전향한 케이스다.

하지만 LG 이형종 만큼 파란만장한 변신 과정을 겪은 선수는 없는 것 같다. 2008년 서울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한 이형종은 계약금을 4억3000만원이나 받으며 유망주 투수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 매년 2군에 머물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1군 성적은 2010년 2경기에 나가 9⅔이닝을 던진 것이 전부였다.

고교 시절부터 누적된 팔꿈치와 어깨 부상이 심해지면서 공을 던질 수가 없었다. 2010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형종은 골프선수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야구에 대한 미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를 건다는 심정으로 2012년 다시 LG로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투수는 포기한 상태였다.

어깨 부담이 덜한 외야수로 새 출발했다. 2014년 말부터 서용빈 코치의 도움 속에 타격 훈련을 시작했고, 1년간의 2군 생활을 거쳐 올해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오키나와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시즌을 준비했다.

시범경기서 만만치 않은 방망이 실력을 선보였던 이형종은 지난 10일 인천에서 열린 SK전에서 타자로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7번 중견수로 선발출전해 4타수 1안타를 치며 첫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12일 잠실에서 열린 롯데와 홈게임에서는 생애 첫 타점 및 득점을 기록했다. 7회초 수비때 중견수로 교체 출전한 이형종은 8-8 동점이던 7회말 1사 2,3루서 중견수쪽으로 적시타를 날리며 주자 2명을 모두 불러들였다. 볼카운트 1B2S에서 롯데 투수 윤길현의 132㎞ 슬라이더를 받아쳐 중전안타를 때려냈다. 타자 전향 후 기록한 첫 타점이었다. 이어 이형종은 박용택의 우중간 2루타 때 홈을 밟아 생애 첫 득점도 올렸다. 9회말에는 1사후 상대 투수 이성민으로부터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터뜨리며 장타력도 과시했다. 타자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경기였다.

타자로 변신한 지 2년째인 이형종이 주전을 꿰찰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동력과 강한 어깨가 돋보이는 수비력도 무난하다는 평가다.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타자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투수 시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자세와 체력이 필수다. 그가 역사에 남을 성공 사례로 성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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