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무혈 입성의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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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는 KBO리그에서 부동의 홈런왕이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고, 특히 2014년(52홈런)과 2015년(53홈런)에는 2년 연속 50홈런을 돌파했다. 4년 연속 홈런킹과 2년 연속 50홈런 돌파는 한국 최초 기록이었다. 때문에 박병호는 최소한 힘과 장타력에서는 이미 국내 수준을 넘어선 선수로 평가받았다. 미네소타 역시 박병호에게 포스팅 금액(1285만달러)과 5년 계약액(최대 1800만달러) 등 총 3085만달러를 썼다.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장타력을 보여주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네소타는 '기대'는 했을 지언정 '확신'은 하지 않았다. KBO리그가 마이너리그 트리플A 수준이라는 평가가 크게 작용했다. 상대 투수의 역량이나 야구장의 크기 등의 변수 때문에 박병호의 장타력이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지 의문을 가졌다.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됐던 바다.
또한 5년 계약 내용에 다양한 옵션이 달렸다. 보장기간 4년동안은 1200만달러를 받고 5년째에 미네소타가 박병호와 계약을 원하면 650만달러를 줘야한다. 만약 미네소타가 거부한다면 50만달러의 바이아웃 조항도 있었다. 무엇보다 다소 높아보이는 인센티브 옵션 조항이 걸렸다. 타석 옵션(450타석 7만5000달러, 이후 525타석까지 25타석 당 10만달러. 550타석 때는 17만5000달러 추가. 600타석은 20만달러 추가)과 수상 옵션 등이 매우 세부적이고 구체적으로 걸렸다.
결국 박병호에게 '모든 역량을 쏟아보라'는 주문을 계약 내용에 담은 셈이다. 그러나 박병호는 시범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터트리며 미네소타 구단과 현지의 의구심을 완전히 털어냈다. 'KBO리그의 홈런킹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명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입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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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행 확보, 남은 과제는
무엇보다 박병호의 홈런이 약한 투수를 상대로 운좋게 나온게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날 박병호에게 홈런을 맞은 제이슨 오도리지는 올해 탬파베이의 4선발이 유력시 되는 진짜 메이저리거다. 지난해에는 탬파베이에서 9승9패,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했다. 탬파베이는 2015시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4위에 그쳤다. 근본 원인은 타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투수력은 아메리칸리그 상위에 속한다. 지난해 팀 평균자책점이 3.74로 AL 전체 4위였다. 오도리지도 잘던졌지만, 타선 지원 부족으로 승수를 더 올리지 못했을 뿐이다.
오도리지는 2012년 캔자스시티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이듬해 탬파베이로 팀을 옮긴 후 2014년부터 꾸준히 선발로 뛰었던 투수다. 2014년 11승(13패)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고, 지난해에는 9승을 거뒀다. 그러나 100이닝 이상 던진 팀 선발진 중에 평균자책점(3.35) 2위, WHIP(1.15) 3위를 기록했다. 타선이 조금 더 도와줬다면 충분히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오도리지를 상대로 친 박병호의 만루홈런은 정말 가치가 높다. 시범경기 홈런임에도 몰리터 감독이나 현지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박병호는 기술적으로도 KBO리그 홈런킹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볼카운트 1B1S에서 들어온 3구째 바깥쪽 빠른 공. 코스나 스피드가 어중간하긴 했지만, 오도리지의 실투라고 단정할 순 없다. 단지 박병호의 스윙 스타일을 제대로 알지 못한 듯 하다.
박병호는 이런 코스의 공을 잘 공략한다. 강한 힘을 바탕으로 곧잘 밀어치기도 하다. 코스가 완전히 빠지지 않으면 긴 리치를 이용해 잡아당겨 홈런을 만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도리지의 공은 완전히 바깥쪽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에 걸쳤다. 박병호는 정확한 타이밍으로 이 공을 퍼올렸고, 타구는 높이 뜬 채 날아가 좌중간 담장 뒤쪽에 떨어졌다. 현지에서는 비거리가 약 117m라고 나왔다. 이날 현지에 강한 역풍이 불었는데, 그걸 힘으로 이겨낸 것이다.
사실상 이 홈런으로 박병호는 힘과 기술에서 메이저리그급 실력을 지녔다는 걸 완벽하게 입증했다. 그가 플로리다 포트샬럿 스포츠파크의 좌중간 관중석에 꽂은 건 단순한 '홈런볼'이 아니다. 반신반의하던 현지 언론이나 코칭스태프, 팀 동료들의 머릿 속에 박아버린 '확신'의 신호탄이었다.
이제 박병호는 무난하게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일 수도 있다. 그랜드슬램으로 최고의 신고식을 했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는 게 첫 번째 숙제다. mlb.com의 표현대로 힘의 잠재력을 보여준 만큼, 이제는 '안정감'의 측면을 한번 더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말 중요한 건 시범경기가 아니라 정규리그다. 리허설 격인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홈런이 정규리그에서도 꾸준히 나올 수 있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