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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9일 한국시리즈 3차전. 날씨는 유별났다. 경기 전 잔뜩 찌푸린 하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날, 박 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오락가락 날씨 때문이다. 그는 "당시 자리를 비우면 의자가 젖을 것 같아서, 아들에게 '그냥 앉아서 버티자'고 했다"며 "둘이 우산을 푹 눌러 쓰고 앉아 있었는데, 나중에 TV 화면에서 '저 분들은 끝까지 버티고 있네요'라는 멘트까지 나왔다"고 말하며 웃었다.
박 회장은 1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연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의 여운을 이렇게 표현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경기도 바로 3차전이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애정은 같하다.
"14년동안 우승을 한 차례도 못 안겨드렸는데도 변함없이 응원해 주신다. 정말 감사하다. 두산은 사랑을 많이 받는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두산 입사 첫 해인 1982년 OB가 프로 원년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박 회장은 베어스의 4차례 우승을 모두 지켜봤다.
"우리 팀은 한결같은 부분이 있다. 1~2명의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선수들이 고르게 열심히 하는 팀"이라며 "세월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팀 컬러가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우승보다는 이런 팀 컬러가 유지되는 게 고맙다"고 했다.두산은 지난 시즌 파격적인 행보를 했다. '통 큰 투자'를 했다. FA 자격을 얻은 좌완 선발 투수 장원준을 4년 84억원에 데려왔고, 더스틴 니퍼트와 외국인 역대 최대연봉 150만달러(약 16억원)에 재계약했다. 두 선수는 포스트 시즌에서 최강의 원-투 펀치를 형성하며 두산 우승에 기여했다.
그동안 두산은 '화수분 야구'라는 별칭처럼 뛰어난 육성 시스템을 갖췄다. 하지만, 외부 영입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박 회장은 "선수를 꼭 키워야만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결정은 매우 과감하면서도 합리적이었다.
두산은 올 시즌이 끝난 뒤 간판타자 김현수가 FA로 풀린다. '김현수 재계약에 어떤 지원을 하겠냐'는 질문에 "내 개인적 감정은 중요치 않다. 프런트에서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다. 나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열심히 벌어 가급적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즉, 구단에서 김현수를 잡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구단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 이유는 확실하다. 박 회장은 "야구를 정말 좋아하지만, 팬의 한 사람일 뿐이다. 야구단 운영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며 "전문분야가 아는데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은 팀 경쟁력을 낮추는 일이다. 그 부분은 구단주와 사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내가 계열사 사업계획을 모두 보고 받는다. 하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두산 베어스"라며 "매년 목표가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똑같아서 재미가 없다. 안 봐도 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구단운영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박 회장이지만, 통 큰 투자를 약속하는 뉘앙스의 말은 계속 나왔다.
박 회장은 야구단의 선수와 직원의 우승 보너스에 대해서도 "김승영 사장이 조만간 '얼마를 달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네'하고 달라는대로 줄 것이다. 구단주와 사장이 상의해 결정하면 나는 그대로 할 것"이라고 했다.
14년 만에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두산 선수단. 이번 겨울은 모든 면에서 따뜻할 것으로 보인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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