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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km 휴전선을 앞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경기도 최북단 연천군. 막연하게 멀게 느껴지는 다소 낯선 지명인데, 알고보면 숨은 보석같은 한반도의 중앙, 중부원점이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이 있고, '천혜의 절경' 주상절리가 자리하고 있다. 인구 4만5000여명의 연천군민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 하나 더 있다. 국내 유일한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이 고대산 자락에 위치한 연천베이스볼파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연천군은 미라클 야구단의 메인 스폰서이고, '미라클'은 연천군의 슬로건이다.
비교적 작은 지자체 연천군과 독립구단 미라클은 어떻게 인연이 닿은 것일까. 또 연천 사람들은 지난 3월 출범한 야구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일 연천군청에서 김규선 군수(63)를 만나 물어봤다.
연천 미라클 선수 대다수는 이미 좌절을 경험하고 실패를 맛본 선수들이다. 프로에 입단했으나 잠재력을 펼치지 못했거나, 야구를 포기했다가 다시 글러브를 잡은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선수 28명 중 9명이 프로 출신이다. 김 군수는 이런 미라클 구단의 특성이 지리적인 요인 때문에 오랫동안 좌절해온 연천군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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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에 인구 11만명을 자랑했던 곡창지대 연천이다.
연천 미라클의 팀명도 연천군이 내건 슬로건 '통일한국심장 미라클 연천'에서 따왔다. 올해부터 사용하고 있는 슬로건인데, 김 군수가 아이디어를 내 탄생했다.
김 군수는 "(독립구단을 표방했던)고양 원더스의 실패 사례가 있지만, 미라클 구단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 기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연천과 미라클 구단이 추구하는 바가 같다. 선수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연천군도 야구단과 함께 기적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후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라클 출범 후 50여일이 흘렀다. 연천지역의 야구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일까. 김 군수는 "65세 이상 인구가 23%나 되다보니 야구를 모르는 분들도 계시지만,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프로나 학교 팀이 아니고 좌절을 딛고 미래를 꿈꾸는 팀이다보니 관심이 더 특별한 것 같다"고 했다.
연천은 넥센 히어로즈를 응원하다.
독립구단 미라클로 널리 알려졌지만, 연천군은 프로야구와 인연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홈구장인 서울 목동야구장 외야 오른쪽 펜스를 보면 연천군을 알리는 광고판이 눈에 들어온다.
김 군수는 히어로즈의 열성팬이다. 매년 히어로즈의 목동경기 때 '연천군민의 날' 행사가 열린다. 연천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고, 관광홍보도 한다. 100여명의 연천군민이 목동구장을 찾아가 히어로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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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군수는 "학창시절에 축구선수로 뛰어서 그런지 예전에는 사실 야구 재미를 몰랐다. 그런데 요즘 히어로즈 경기를 보면 신이 난다"고 했다. 김 군수는 두 차례 히어로즈 홈경기 시구를 했다.
히어로즈는 모기업 지원없이 운영하고 있는 야구전문기업. 프로야구판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인데, 이런 점이 끌렸다고 한다. 김 군수는 "젊은 사람들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히어로즈를 끌어가고 있다. 지금 시대에 맞는 청년정신이 히어로즈에 살아있다. 이런 히어로즈의 사업이념이 연천과 잘 맞는다"고 했다.
당초에 연천군은 현재 베이스볼파크가 조성된 고대산 자락에 9홀 골프장 조성을 계획했다. 동호회가 활발한 야구가 산업적으로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골프장에서 야구장으로 방향을 바꿨다. 김 군수는 "야구인을 모아 대회를 열고, 야구 페스티벌을 만들어 운동도 즐기면서 지역 경기도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미라클과 마찬가지로 연천군도 야구를 통해 미래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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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천은 야구 불모지였다. 연천 출신 야구인도 없다. 2년 전 중학교 야구팀 창단을 추진했다. 서울의 모 고교팀 감독 출신 지도자 영입을 결정했고, 선수도 15명 모았다. KBO(한국야구위원회)도 도움을 약속했다. 그런데 당초 팀창단이 예정됐던 학교, 교육청이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김 군수는 "중학교 팀 창단이 불발돼 아쉬움이 컸다. 앞으로 야구와 축구팀을 1개씩 창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천군과 별도로 미라클 구단은 군내에 리틀야구단 창단을 구상하고 있다.
연천군은 알고보면 스포츠 지자체다. 지난해 북한 축구팀을 초청해 대회를 열었고, 계속해서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김 군수는 "미라클 선수들이 야구로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했으면 좋겠다. 연천군도 미라클 구단처럼 '통일 한국의 수도'라는 기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연천=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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