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들이 또 성장하게 만들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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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부터 2011년까지의 8시즌. 이승엽의 '400호 홈런'의 공백기다. 언뜻 당시 이승엽의 페이스를 생각해보면 매년 최소 30홈런은 날렸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이승엽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시즌 동안 늘 30홈런 이상을 쳤다. 이 기간의 연간 평균 홈런 갯수는 무려 43개였다.
이 수치가 만약 이후의 8년동안 유지됐다면 산술적으로 이승엽은 300개 이상의 홈런을 터트릴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간 30개씩만 가정해도 240개다. 그랬다면 지금의 이승엽은 '400호 홈런'이 아니라 전인미답의 '700호 홈런' 고지를 밟았을 지도 모른다. 한국 프로야구계로서는 또 다른 성취를 잃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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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충분히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지바 롯데에서 사실상 이승엽의 전담 타격코치 역할을 하면서 낯선 무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었기 때문. 때문에 이승엽도 400호 홈런 달성후 가진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를 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훈련을 했다. 그러면서 야구가 늘었다"는 말을 했다. 이는 2005년 김 감독이 지바 롯데 순회 코치로 이승엽을 지도했던 것에 대한 감사 인사다.
일본 진출 2년차의 이승엽은 기로에 서 있었다. '아시아 홈런킹'이라는 명성에 무색하게 진출 첫해 타율 2할4푼에 14홈런에 그쳤다. 당시 보비 발렌타인 지바 롯데 감독은 이승엽을 레귤러 멤버로 여기지 않았다. 대타 요원 쯤으로 다뤘다. 이승엽도, 구단도 당황했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인물이 김 감독이다. 말이 '순회 코치'지 사실상 이승엽의 전담 코치였다.
김 감독은 2005년 이승엽을 붙들고 특유의 '지옥 훈련'을 감행했다. 소리를 치고, 욕도 했다. 손바닥에서 피가 줄줄 날 정도로 강하게 훈련을 시켰다. 과정은 썼지만, 열매는 달았다. 이승엽은 결국 지바 롯데에서 2005년 30홈런을 치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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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일본에서의 8년간이 선수이자 인간으로서의 이승엽을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일본에서 고생하면서 자기 자신과 싸웠던 시기가 이승엽을 더 성장하게 만들지 않았나 한다"고 평가했다. '국내에 남아있었다면 몇 개의 홈런을 더 쳤을까'라는 의문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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