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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존경한 라이벌 심정수가 그리운 이유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5-06-04 09:28


이승엽은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펼치던 시절, 그의 홈런 실력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심정수는 이승엽을 앞선 적이 없었지만, 훌륭한 경쟁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지난 1월 미국 애리조나 LG 스프링캠프를 찾아 양상문과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심정수.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삼성 이승엽이 존경하는 사람들중에는 한때 라이벌이었던 심정수가 있다.

심정수는 이승엽의 1년 선배다. 심정수 역시 고등학교(동대문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 장종훈이 고졸 출신 연습생 신화를 쓰며 프로야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면, 심정수는 이승엽과 함께 고졸 출신 거포들의 성공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심정수는 지난 2008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학 연수를 마치고 한때 심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던 심정수는 지금 야구를 하고 있는 두 아들의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있다. 심정수는 지난 1월 LG 트윈스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깜짝 방문, 양상문 감독, 이병규, 이진영 등 현역 시절 함께 했던 선후배들과 만나 추억에 젖기도 했다.

심정수는 이승엽의 라이벌이었지만, 그를 한 번도 뛰어넘지는 못했다. 2002년과 2003년, 두 시즌 연속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홈런 경쟁이 벌어진다. 2002년 이승엽은 4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2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당시 현대 소속이던 심정수는 46홈런으로 이승엽과는 불과 한 개차였다.

2003년에는 이승엽이 한 시즌 최다인 56홈런을 치며 전국을 잠자리채 열풍으로 몰어넣었다. 하지만 경쟁자 심정수가 없었다면 이승엽이 당시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세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즌 막판까지 이승엽을 뒤쫓던 심정수는 53홈런에서 레이스를 마쳤다. 이승엽은 늘 "홈런은 정수형이 나보다 더 뛰어나다"며 존경심을 표시했었다.

심정수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홈런왕에 오른 것은 2007년이었다. 심정수는 2004년말 FA 자격을 얻고 4년 60억원에 계약을 하며 삼성으로 이적했다. 심정수의 몸값은 이후 역대 최고 기록으로 FA 시장이 열릴 때마다 언급이 됐다. 심정수는 2007년 31홈런, 101타점을 기록하며 생애 처음으로 홈런왕과 타점왕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때 이승엽은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이승엽이 한국 프로야구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지금, 심정수가 그리운 것은 그가 너무 이른 시기에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심정수는 2004년부터 각종 부상에 시달려 이승엽을 '위협'했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삼성 시절에는 양쪽 어깨와 무릎 수술을 모두 받았다. 근육질의 건장한 체구에 타구를 까마득하게 외야로 보내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숱한 수술 자국 때문에 '로보캅'이라 불리기도 했다. 심정수는 현역 마지막 시즌이던 2008년 22경기에 출전한 뒤 그해 12월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심정수는 "계속 선수로 뛰려면 또 수술을 받아야 한다. 더이상 몸을 속이지 못하겠다. 선수로서 재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지금은 나이 마흔을 넘어서까지 현역을 이어가는 선수들이 종종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삼성 진갑용, LG 이병규, NC 손민한과 이호준 등이 불혹의 나이에 그라운드를 누빈다. 심정수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마흔 가까이 현역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의 통산 홈런수는 328개(역대 4위) 이상, 어쩌면 이승엽보다 먼저 400홈런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이승엽과 심정수는 2002년과 2003년 시카고 컵스와 플로리다 말린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한때 메이저리그를 꿈꾸기도 했었다. 만일 심정수가 지금도 현역이라면 이승엽과 여전히 홈런 대결을 펼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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