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상처투성이 손바닥에 감긴 한화의 자존심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01-19 15:41


◇한화 이글스의 한 타자가 19일 고치 시영구장에서 붕대로 칭칭 감긴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스윙을 많이 해 물집이 잡히고, 그게 터지며 피부가 벗겨진 것을 붕대로 감싼 것이다. 고치(일본 고치현)=이원만 기자wman@sportschosun.com

"이름은…밝히지 말아주세요."

분명히 손이다. 하지만 이걸 정상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하얀 붕대와 밴드가 촘촘히 휘감긴 모습이 마치 심각한 화상 환자의 손처럼 여겨진다.하지만 이건 화상 환자의 손이 아니다. 심각하거나 특이한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한화 이글스의 고치 스프링캠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야구선수의 손일 뿐이다. 대부분 타자들의 손은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붕대가 칭칭 감겨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붕대를 감지 않은 선수는 극히 드물다.

19일 고치 시영구장.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지 닷새 째다. 훈련의 강도는 꾸준히 올라가고, 다양한 훈련 메뉴들이 등장하고 있다. 김성근(73)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훈련 프로그램이 매일 아침 선수들에게 공지되는데, 프로그램이 조금씩 달라진다. 훈련 집중도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아직은 훈련이 본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없다. 김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던 코치들이나 선수들은 한결같이 공감한다. "이 정도는 몸풀기죠. 진짜 훈련은 아직 시작 전이에요." 하지만 김 감독과 처음으로 만난 선수들은 벌써부터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냥 엄살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훈련이 녹록치 않다는 명백한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 대표적인 것이 '붕대투성이 손'이다. 마치 '증표'처럼 타자들의 손가락 마디와 손바닥에는 붕대와 반창고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스윙을 하다 물집이 생기고, 그게 터져 벗겨진 피부에서 진물이 흘렀다. 붕대라도 감아줘야 다시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다.

이날 야구장 라커룸에서 정성껏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한 선수를 목격했다. 그는 지저분해진 붕대를 조심스럽게 벗겨낸 뒤 새 붕대를 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를 먼저 정성껏 감고 나서, 바닥 전체를 싸맸다. "많이 쓰라린가"라고 물었다. 그 선수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쓰라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아파서 감는게 아니라, 여기서 피부가 더 벗겨지면 스윙 훈련을 못하니까 감아두는 거에요."

치료를 위해 붕대를 감는 게 아니라, 훈련을 계속 받기 위해 손을 보호하려고 감는다는 뜻. 한화 타자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훈련에 임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 선수가 덧붙인 마지막 말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다. "사진은 찍어도 좋은데, 제가 누군지는 밝히지 말아 주세요. 다른 동료들 손도 전부 이런 모양인데, 괜히 저 혼자 유난 떠는 것 같으니까요. 감독님도 좋게 보지 않으실 것 같네요. 손이 물집투성이, 붕대투성이가 돼도 상관없어요. 올해 정말 잘하고 싶으니까요." 손을 온통 휘감은 하얀 붕대는 한화 선수들의 오기와 자존심이었다.


고치(일본 고치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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