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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목동 넥센과 두산전은 곰곰히 복기할 필요가 있는 장면들이 있다.
1사 이후 김현수와 홍성흔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한 뒤 급격히 흔들렸다. 제구가 갑자기 불안정해지면서 오재원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1사 만루가 됐다.
이때까지 김대우는 올 시즌 네 차례 선발 등판,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어찌보면 김대우에게 찾아온 4회 위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두산 입장에서는 '빅 이닝'이 될 수 있었던 상황.
결국 김대우는 6이닝 7피안타 2실점으로 프로데뷔 이후 감격의 첫 승의 기쁨을 맛봤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넥센의 벤치다. 넥센에는 조상우라는 리그에서 가장 확실한 중간계투가 있다. 선발이 흔들릴 경우 4~6회 정도에 출전, 1차 위기를 저지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염 감독은 조상우 카드를 쓰지 않았다. 선발 김대우 카드를 그대로 밀고 갔다. 냉정하게 봤을 때 조상우로 교체하지 않았다는 것은 승리 확률을 떨어뜨리는 용병술.
염 감독은 여기에 대해 "사실 확실하게 가려고 했다면 연속 안타를 맞았을 때 조상우 카드를 썼을 것"이라고 했다. 1사 1, 2루 상황에서 바꿨을 것이라는 의미다.
김대우를 믿었던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시적으로 흔들리긴 했지만, 이날 김대우의 구위는 좋았다. 두산 타자들에게 난타를 당할 구위가 아니었다. 최근 좋아진 싱커가 패스트볼과 함께 좋은 조화를 이뤘다. 염 감독은 "2점 정도의 실점은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뒷문이 매우 강한 삼성같은 팀이었다면 교체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2점을 준다고 해도 우리가 추가점을 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산은 최근 뒷문이 좋지 않다. 마무리 이용찬 뿐만 아니라 정재훈 윤명준 모두 상대 타자를 완벽히 제압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때문에 4회 위기 상황에서 넥센이 실점을 한다고 해도 경기를 리드한 채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또 하나, 넥센의 특수한 상황도 있다. 넥센 입장에서는 포스트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확실한 선발 요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3명의 확실한 선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넥센은 없다. '3선발 카드' 발굴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김대우도 후보 중 한 명이다. 리그에서 타점이 가장 낮은 잠수함 투수. 매우 까다로운 구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험만 쌓는다면 향후 선발로 제 몫을 할 수 있는 유망주다.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김대우에게 믿음을 주면서, 개인의 성장과 팀의 객관적인 전력을 높히려는 두 가지 의도가 있었다.
또 하나는 조상우에 대한 체력적 배려다. 그는 13일 부산 롯데전에서 2이닝동안 30개의 공을 뿌렸다. 이날 등판은 가능했지만, 체력적인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를 쓴다면 15일 두산과의 2차전에서는 조상우를 쓸 수 없다.
결국 기로의 순간에서 염 감독은 김대우를 계속 끌고 가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렸다. 8-2로 앞선 7회 1사 1루 상황에서도 조상우를 투입하지 않고, 김영민을 내세웠다. 조상우 카드를 최대한 아껴 두산과의 2차전에도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
결국 이날 경기는 넥센의 베스트 시나리오로 흘러갔다. 김대우는 프로데뷔 첫 선발승을 올렸다. 위기를 넘기며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의미있는 경험을 했다. 150㎞이 넘는 패스트볼을 던지는 김영민의 자신감도 끌어올렸다. 게다가 조상우에게 하루 휴식을 줬다.
물론 사령탑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날 김대우가 무너져 패했다면, 넥센 입장에서 1패는 너무나 뼈아팠을 것이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면밀히 파악하고, 팀의 방향성을 확실히 설정한 뒤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해 판단을 내리는 기로의 순간. 이 순간들의 선택은 감독의 고유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염 감독의 결정은 매우 인상적이다. 목동=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