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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타순, 수비 포지션이 정해진 상태로 뛰어본 적이 없어요."
SK 와이번스 외국인 타자 스캇이 퇴출됐다. 자신의 메이저리그 경험과 커리어를 이만수 감독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며 항명을 했다. 한국 야구에서는 쉽게 볼 수가 없는 일. 하지만 미국 스타일로 보면 베테랑 선수들이 감독과 신경전을 벌이는 일은 종종 있다. 대게, 베테랑으로서의 예우를 바라는 얘기다. 감독이 자신을 갑자기 기용하지 않고, 수비 포지션을 바꾼다면 이에 대한 아쉬운 소리를 한다. 그게 프로 스포츠다. 결국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고, 그 선수들이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하지만 박용택을 보면 베테랑으로서의 예우는 없다. 오히려 신인급 선수처럼 희생을 한다. 올시즌만 봐도 그렇다. 시즌 전 1번타자로 정착을 위한 준비를 했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1번 타순에 들어선 뒤, 리드오프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박용택은 진정한 1번타자가 되겠다며 체중을 감량하고 도루 능력을 키웠다. 그런데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클러치 능력이 필요하다"며 3번 타순으로 이동했다. 이 뿐 아니다. 외국인 타자 스나이더가 영입되며 수비 위치도 중견수에서 좌익수로 이동했다. 타순과 포지션 변경. 밖에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선수에게는 민감한 문제다. 밸런스가 흐트러지고 자신의 개인 성적이 떨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아품도 있었다. 2010 시즌을 마치고 생애 첫 FA 계약을 했다. 박용택은 2010 시즌 팀 사정에 따라 지명타자로 뛰었다. 팀 타선에 힘이 되겠다며 살도 찌우고 애를 썼다. 그런데 시즌이 끝나고 FA 계약을 하려니 자신은 수비를 하지 않는 반쪽 선수로 인식이 되고 있었다. 당연히 시장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LG에 남고 싶어 도장을 찍었다. 4년 34억원이라는 대우를 받았지만, 실상은 채우기 힘든 옵션이 수두룩하게 걸려있던 아픔의 계약이었다. 그리고 박용택은 지금 지명타자가 아닌 LG의 주전 외야수로 뛰고 있다.
"LG의 데릭 지터가 되기를 꿈꿉니다."
16일(한국시각) 미국 미네소타 타깃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이번 올스타전의 최고 화제는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 데릭 지터였다. 올시즌 후 은퇴를 선언한 데릭 지터가 생애 마지막 올스타전을 치렀고, 지터를 위해 양팀 선수단과 팬들이 오랜 시간 기립박수를 보내며 뜻깊은 자리를 만들었다.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예우가 아니었다. 한 팀에서만 뛰며 최고 선수로 살아온 선수에게만 할 수 있던 예우였다.
박용택도 이 장면을 지켜봤다. 박용택은 "정말 멋있지 않았나. 선수로서 정말 부러운 장면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올스타전 뿐이 아니다. 양키스는 무조건 우승해야 하는 팀이다. 그런데도 나이가 먹으며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지터를 주전 유격수로 기용한다. 전력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팀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 예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런 대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할 때까지 뛰는게 맞다"며 웃었다.
박용택은 누가 뭐라 해도 LG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2002년 입단 후 13시즌째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다. 팬들이 박용택을 인정하는 이유는 하나다. LG의 10년 암흑기 동안 혼자 팀을 이끌다시피 한 공로를 인정해서다.
LG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선수가 박용택이다. 그리고 선수 본인도 이에 대한 큰 자부심을 느낀다. 박용택은 이번 시즌을 마치고 두 번째 FA 자격을 얻는다. 올시즌 후 FA 자격을 얻는 많은 선수들이 일찌감치 주판알을 튕기고 있겠지만, 박용택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자신은 무조건 LG 선수라는 자부심이 우선이다.
박용택에게 "한국의 데릭 지터가 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LG 유니폼을 입고 성실하게 뛰며, 마지막 은퇴 순간 잠실구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속에 떠나는 역사를 만들 수 있는지를 말이다. 박용택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렇게 되고 싶다"라고 솔직히 말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