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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차일목이 밝힌 '타석 중 투수교체'의 참뜻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4-04-27 17:06


LG와 KIA의 주말 3연전 첫번째날 경기가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8회말 2사 만루 LG 이진영 타석때 KIA 선동열 감독이 포수 차일목을 불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04.25/

"타자 입장에서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작전이죠."

그라운드 안에 있는 플레이어의 입장과 밖에서 바라보는 관찰자의 견해. 이 두 시각의 온도 차이는 180도 다르다. 외부에서 볼 때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드는 장면이 실제로 내부적으로는 '베스트 초이스'로 평가될 때가 많다. 물론 정반대의 상황도 다반사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결과'라는 변수 때문이다. 결과가 나쁘면 아무리 절묘한 작전이라도 저평가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 과정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봐야할 때가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석 중 투수교체 작전'이다.

'독'이 된 변칙 투수 교체

지난 2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2-2로 맞선 LG의 7회말 공격. 2사 1, 2루에서 LG 벤치는 대타로 베테랑 이병규(9번)를 투입한다. KIA 마운드에는 7회말부터 나와있던 김태영이 있었다. 그런데 KIA는 볼카운트 1B2S의 유리한 상황에서 갑자기 투수를 송은범으로 바꿨다. 매우 보기 드문 타석 중 투수 교체 장면. 말하자면, '변칙 작전'이다.

결과만 보면 이 작전은 실패였다. 송은범은 초구 볼에 이어 2구째에 이병규의 다리를 맞춰 1루로 내보냈고, 결국 다음 타자 이진영 타석 때 초구 볼을 던진 뒤 박경태와 바뀌었다. 박경태가

이진영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며 점수를 내줬고, 이게 이날의 결승점이 됐다.

왜 유리한 카운트에서 교체했나


이 작전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왜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제구력이 불안정한 송은범으로 바꿨는가'. 이게 핵심이다. 필승조인 김태영으로 그대로 끌고 가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송은범을 내거나. 혹은 좌타자 이병규가 나왔으니 좌투수 박경태를 내는 게 맞지 않는가라는 의문점.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그러나 KIA는 다소 의외의 선택을 했다. 왜 였을까. 당시 사인을 내고 투수의 공을 받았던 포수 차일목은 "그 당시에서는 최선의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은 이병규 선배 타격감이었다. 또 타석에 들어왔을 때의 자세로 '어떤 공을 노리고 있을 것인가'를 따져봤다. 마지막으로 그 상황에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을 생각했다".

승부처였다. 그 짧은 순간에 KIA 배터리는 수많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다. 결론은 이랬다. "이병규 선배는 최근 타격감이 좋지 않아서인지 타석에서 공을 골라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다면 쉽게 배트를 낼 수 없는 변화구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마침 투수 김태영은 주무기가 커브다."

실제로 이병규는 초구 볼과 2구 스트라이크를 모두 선 채 지켜봤다. 구종은 모두 커브. 그리고 3구째에 스윙을 했다. 사실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다. 커브가 실투성으로 높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병규는 이 공의 밑부분을 쳐 백스톱으로 보냈다. 이제 KIA 배터리의 노림수는 노련한 이병규에게 사실상 다 노출됐다고 봐야한다. 다른 구종이 필요했다.

운이 없던 슬라이더 선택

만약 김태영의 직구가 140㎞대 초반까지만 나왔어도 KIA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태영의 직구로는 이병규를 상대하기 어렵다. 이미 커브도 노출이 된 상황이다. 지지 않으려면 결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선택은 송은범이었다. 더 정확히는 송은범의 빠르고 각이 짧은 슬라이더였다.

차일목은 "볼카운트 1B2S에서 송은범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슬라이더로 땅볼을 유도하라는 벤치의 의도를 알았다. 이병규 선배의 컨디션을 봤을 때 송은범의 슬라이더라면 충분히 헛스윙이나 범타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며 당시로서는 교체가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송은범의 초구는 낮은 싱커였다. 그러나 이병규는 이걸 참아냈다. 코스는 좋았지만, 이병규는 노련했다. 2구째는 예정대로 슬라이더. 몸쪽이었는데, 다리에 맞았다. 차일목은 "평소 이병규 선배였다면 피하거나 커트를 해냈을 코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컨디션이 안좋다보니 그냥 맞더라. 정말 아쉬웠다"고 밝혔다. 송은범 역시 당시 상황에 대해 "슬라이더는 잘 떨어졌다. 헛스윙을 유도하려고 던졌는데, 그게 하필 맞아버렸다"고 아쉬워했다.

타석 중 투수교체, 타자는 헷갈린다

그라운드 안에서 전개된 상황은 이렇다. 최선의 선택이 늘 최선의 결과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결국 KIA 벤치의 '타석 중 투수교체'는 패전을 불렀다. 하지만 이 작전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날 결과가 실패였을 뿐, 분명 타자보다는 투수에게 유리한 작전이기 때문이다.

이 작전이 나왔을 때 공을 받은 차일목은 타석에서도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마침 당시 상대팀의 지휘봉을 잡은 것은 선동열 감독이다. 때는 2010년 8월 20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열린 KIA와 삼성의 경기. 4회까지 4-1로 앞서던 삼성은 5회말 2점을 내줘 4-3으로 추격당했다. 삼성 선발은 좌완 장원삼.

차일목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5회말 2사 후라 장원삼이 아웃카운트 1개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타석에 들어서 볼카운트 2B2S에서 바로 교체를 하더라. 사실 그때 나는 앞 타석에서 홈런도 치고 해서 장원삼의 공에 대해 크게 자신감이 있던 때였다. 근데 투수가 갑자기 바뀌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결국 땅볼로 아웃됐다"고 말했다.

당시 삼성을 맡았던 선 감독은 비록 앞선 상황인데다 선발의 승리요건도 걸려있었지만, 흐름이 위태롭다고 판단해 주저없이 투수를 바꾼 것이다. 결국 삼성은 이날 9대5로 이겼다. 타자의 입장에서 이를 경험한 차일목은 "타석이 진행되는 중에 투수를 바꾸는 것은 100% 투수에게 유리한 작전이다. 타자는 누구나 당황하게 돼 있다"면서 "비록 결과는 안좋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또 나올 수 있다. 그때 좋은 결과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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